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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름 세시풍속도 바꾼다 … 구제역에 가린 ‘보름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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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해 정월 대보름 세시풍속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사진은 올해는 열리지 못하는 당진군 기지시 줄다리기. [프리랜서 김성태]

충남 당진군 송악면 기지시리에서는 해마다 정월 대보름(음력 1월 15일) 에 주민 수 백 명이 참가하는 줄다리기 행사를 해왔다. 기지시 줄다리기(중요무형문화재 제75호)로 는 볏짚 수만 단으로 길이 200m, 지름 1m의 줄을 만들어 당기면서 재난을 물리치고 마을의 평안을 비는 세시풍속 행사다. 그러나 올해는 이 행사를 볼 수 없게 됐다.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구제역을 막기 위해서다. 기지시 줄다리기 보존회 구자동 회장은 “당초 16일 열 예정이던 줄다리기를 취소했다”며 “행사를 열지 못해 아쉽지만 구제역이 더 이상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줄다리기가 외부 사정 탓에 대보름에 열리지 못한 것은 1982년 무형문화재 지정 이후 처음이다.

 구제역 여파로 대보름 세시풍속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전남도는 설 연휴가 시작된 2일부터 대보름인 17일까지 도내 564곳에서 세시풍속놀이가 열릴 예정이었으나 많은 행사가 취소되고 있다고 9일 밝혔다. 지난해엔 모두 682곳에서 세시풍속 놀이를 했다. ▶영암 세시풍속경연대회 ▶영광 정월대보름 들불놀이제 ▶담양 창평 슬로시티 당산제 ▶나주 정월대보름 세시풍속놀이 ▶순천 낙안읍성 대보름 큰잔치 등 외지인들이 많이 참여하는 행사는 모두 백지화됐다. 다만 당산제·쥐불놀이·윷놀이·농악·달집태우기 등이 마을 단위로 조촐하게 열린다. 광주광역시내 24곳에서 열리는 행사도 대부분 당산제·농악놀이 정도에 그친다. 김판암 전남도 문화예술과장은 “외지인이 많이 모이는 행사는 대부분 취소되고 있다”며 “남은 행사도 개최 여부를 놓고 재검토 중인 게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은 구제역이 발생한 충남 지역도 마찬가지다. 충남 금산군은 “구제역이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아 16일로 예정된 장동 달맞이축제를 취소했다”고 밝혔다. 안섬풍어제(충남 무형문화재 제35호)와 예산 달집축제, 청양 동화제(충남무형문화재 9호), 논산 대보름 축제, 태안 용왕제 및 달집태우기, 충북 옥천 민속축제·마조제(馬祖祭)도 열리지 않는다.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한 차단 방역에 주력하기 위해서다.

  행사를 열더라도 규모는 대폭 축소한다. 강원도 강릉 남대천에서 열리던 망월제는 제례만 올린다. 망월제는 ‘다섯 개의 달’ 전설을 간직한 강릉의 대표적 정월 대보름행사다. 삼척시도 전국 줄다리기대회와 살대 세우기 등을 마련했으나 제례만 지내기로 했다. 우천면 문암리 등 횡성군의 마을들 또한 대보름을 전후해 열었던 척사대회를 하지 않기로 했다.

 충남 태안 조개부르기제와 서산 간월도 굴부르기 군왕제는 외부 인사를 초청하지 않기로 했다. 심대보 옥천문화원장은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모이는 행사는 자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이찬호·서형식·신진호 기자
사진=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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