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목소리 커진 무슬림 형제단 … 심기 불편한 오바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반정부 시위 13일째인 6일(현지시간)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 시내 타흐리르 광장에서 시위대 일부가 탱크 아래에서 시위 소식을 전한 신문을 읽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카이로 로이터=연합뉴스]


이집트 최대 야권단체인 무슬림형제단(이하 형제단)이 6일(현지시간) 정부와 협상에 나서며 시위 정국에서 적극적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이를 바라보는 미국의 심기는 불편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형제단을 “이집트 내에서 단지 하나의 분파일 뿐”이라며 의미를 축소했다. 또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지만 잘 조직돼 있고 반미적인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라디오 방송 NPR과 인터뷰에서 이집트의 여야 대화를 “대단한 일”이라고 환영하면서도 형제단의 대화 참여에 대해선 “향후 전개 과정을 지켜보겠다”며 싸늘하게 반응했다.

  미국은 친미·친이스라엘 성향인 이집트와 요르단을 매개로 아랍권을 관리하며 이란을 견제해 왔다. 아랍 맹주 격인 이집트에서 샤리아(이슬람법)에 의한 통치를 주장하는 형제단이 집권한다면 중동에서의 헤게모니가 송두리째 위협받을 수 있다고 미국은 우려하고 있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3일 ABC방송과 인터뷰에서 “이집트가 혼란에 빠질 것이어서 퇴진할 수 없다”며 혼란의 배후로 형제단을 지목했다. 이스라엘은 형제단을 불안의 근원으로 본다.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은 형제단의 집권 가능성을 거론하며 “이슬람 원리주의 단체는 평화를 가져오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면 이란은 형제단을 통해 거대 이슬람 동맹국의 탄생을 기대하고 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 는 이집트 시위를 “이슬람주의에 대한 자각”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형제단은 “9월 대선에 후보를 내지 않겠다”며 서방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집트의 시위는 이슬람주의의 봉기가 아니라 불공정·권위주의 체제에 대해 모든 계층·종교·분파가 참여한 항거”라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이슬람주의 대신 대중노선을 앞세운 것이다. 정치적 원수나 다름없는 현 이집트 정부와 가장 먼저 대화를 시작한 야권 조직도 이들이었다.

 1928년 결성된 무슬림형제단은 54년 이집트 실권자 가말 압델 나세르 의 암살을 기도한 사건 이후 지금까지 불법 조직으로 규정돼 왔다. 무바라크 정권은 수많은 반서방 테러의 배후로 형제단을 지목해 재판 없이 고문과 처형을 자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샤리아의 부흥을 주장하는 원리주의 성향과 ‘테러집단’이란 무바라크 정권의 낙인은 서방이 형제단을 과격 집단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형제단은 9·11 테러를 비난하는 등 비폭력 원칙을 강조해 왔다. 실제 테러에 가담했다고 확인된 사례도 많지 않다. BBC의 중동 담당 에디터인 제레미 보언은 “형제단은 서방의 오해를 받고 있는 조직”이라고 말했다.

이충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