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들 휘발유 L당 38원 더 받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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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국제 휘발유값이 올라 국내 휘발유값도 똑같이 올릴 수밖에 없다는 정유업계의 주장은 사실과 다릅니다.”

한국 소비자운동의 ‘살아있는 역사’로 불리는 서울여대 송보경(66·교육사회학·사진) 명예교수가 ‘비싼 기름값의 비밀’을 고발하고 나섰다. 소비자시민모임(소시모)에서 석유시장감시단장을 맡고 있는 송 명예교수는 최근 ‘2010년 석유시장 분석보고서’를 내놓고 “지난해 국제 휘발유값 인상폭보다 정유사의 공장도가격 인상폭이 L당 38원 많다”며 “소비자가 주유할 때 휘발유 50L를 넣었다면 국제 시세 변동분보다 1900원을 더 지불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26일 서울 신문로2가 소시모 사무실에서 만난 송 명예교수는 “지난해 1월 첫째 주부터 12월 마지막 주까지 총 52주간의 휘발유값 변동을 국제 시세·환율·세금·공장도가격·소비자가격 등 철저히 데이터에 입각해 분석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조사를 시작하기 전에 정유업계와 긴밀히 협의해 업계와 소비자단체가 모두 동의할 수 있는 분석의 틀을 만들어냈다”며 “그렇기 때문에 분석 결과에 대해 업계가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너무 떠들지만 말아달라’는 반응을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화여고와 서울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필리핀국립대에서 교육사회학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송 명예교수는 40년 이상 소비자운동에 앞장섰다. 국민훈장 동백장과 유관순상 등을 받았다. 1983년 소시모 창립 당시부터 핵심 멤버로 참여해 이사·부회장·회장을 역임했으며 세계 115개국 220개 단체가 가입한 국제소비자기구 부회장도 지냈다. 그는 “경쟁이 최선의 정책이란 신념으로 소비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활동해 왔다”고 말했다.
 
“정유 4사의 과점구조가 문제”
-국내 휘발유값이 국제 시세에 비해 얼마나 비싼 건가.
“국제 휘발유값과 국내 정유사 공장도가격의 변동을 주간 단위로 비교·분석했다. 물론 가격이 오른 주간도 있고 내린 주간도 있었다. 먼저 가격이 오른 주간만 따로 살펴봤다. 국제 휘발유값은 L당 397원, 공장도가격은 451원이 각각 올랐다. 국제 시세가 오를 때 정유사들은 공장도가격을 L당 54원 더 올렸다는 얘기다. 다음으로 가격이 내린 주간을 따져봤다. 국제 휘발유값은 266원, 공장도가격은 282원이 각각 내렸다. 즉 공장도가격이 국제 시세보다 16원 더 많이 떨어졌다. 둘을 종합하니 L당 38원이란 계산이 나온 것이다.”

-국제 기름값은 지역별·제품별로 여러 종류가 있다. 무엇을 기준으로 했나.
“우리도 제일 고민했던 부분이다. 국내 정유사들은 주로 두바이유를 수입한 뒤 정제과정을 거쳐 시장에 석유 제품을 공급한다. 두바이유 수입가격은 쉽게 알 수 있다. 문제는 원유 상태에서 휘발유·경유 등을 추출할 때 제품별 생산원가를 계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정유업계의 의견을 들어보니 국제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싱가포르 석유시장 가격(MOPS 가격)이 가장 객관적인 지표라고 판단했다. 우리가 임의로 결정한 게 아니라 정유업계와 합의한 분석틀이다.”

-정유업계는 국제 시세가 국내 시장에 반영되려면 시차가 있다고 하던데.
“통상 2주일의 시차가 있다고 해서 조사에도 그대로 반영했다. 예컨대 1월 셋째 주의 가격을 분석할 때는 1월 첫째 주의 국제 시세를 적용하는 식으로 했다.”

-공장도가격을 국제 시세에 비해 더 올린 것이 그렇게 큰 문제인가.
“현재 국내 석유시장에서 소비자가격은 정유사가 공급하는 공장도가격에 주유소 유통비용과 마진, 각종 세금이 추가되는 구조다. 주유소 유통비용과 마진은 최종 휘발유값의 5.67%(연간 평균)를 차지한다. 이 비율이 많으냐, 적으냐는 판단하기 어렵다. 주유소는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가격을 결정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소비자로선 조금이라도 값싼 주유소를 찾아가는 선택이 가능하다. 그런데 국내 정유사는 4곳뿐이어서 과점에 의한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가계비에서 교통비 비중은 9.2%”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품목은 수없이 많다. 굳이 휘발유값을 집중 분석한 이유는.
“정부가 임의로 몇 개 품목을 선정해 중점 관리한다고 물가가 안정되는 것이 아니다. 전형적인 공급자의 시각이다. 소비자의 눈으로 봐야만 문제점과 해법이 함께 보인다. 핵심은 가계비 지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품목을 찾아내 해당 품목에 대한 소비자의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가계비 지출을 분석하면 개인 교통비의 비중이 9.2%였다. 교통비에서 가장 중요한 품목은 휘발유다. 결국 휘발유값을 안정시켜야 물가안정이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교통비가 문제라면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되지 않나.
“비싸니까 쓰지 말라는 것은 해법이 될 수 없다. 휘발유 소비자 중에는 생계형 자영업자도 있을 것이고 고급 수입차를 타는 부자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누구는 깎아주고 누구는 더 받을 수 있나. 중요한 것은 휘발유값이 가계비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사실이다. 시장은 시장의 관점에서 냉정하게 접근해야 한다.”

-휘발유값이 비싼 데에는 세금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휘발유값에서 세금은 평균 55%다. 우리의 요구는 법정세율은 그대로 두더라도 탄력세율을 탄력적으로 적용해 달라는 것이다. 교통세법 시행령을 보면 법정세율의 30% 범위에서 탄력세율을 적용한다고 명시돼 있다. 현재 법정세율의 11.37%다. 탄력세율을 만든 목적이 뭔가. 국제 유가가 비정상적으로 움직일 때 충격을 완화하고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한 것 아닌가. 정부로선 정책의 우선순위를 물가안정보다 세수 확보에 두겠다는 판단을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국민에게 설명을 해줘야 한다. 진정한 소통은 몇 사람 불러 밥 먹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정책판단의 근거와 이유를 소상히 밝히는 것이다.”

주정완 기자 jw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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