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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 태도 아리송, 무바라크 지지파 총기 제지 안 해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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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호 03면

군(軍)의 태도는 아리송하다. 군인들의 검문검색에도 불구하고, 무바라크 지지자들이 어떻게 무기를 소지한 채 광장에 진입할 수 있었는지 미스터리다. 공식 집계로만 사망자 8명과 부상자 830여 명이 발생할 정도로 사태가 심각했음에도 군은 적극적으로 제지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시위대에 무력 불사용을 선언했다고 하지만 군의 중립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무바라크의 불출마 선언과 타흐리르 광장의 무정부적 폭력사태를 계기로 국가를 위해 반정부 시위자들도 더 이상의 시위는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여론이 고개를 드는 분위기였지만 4일 시위 이후 분위기는 다시 반전되고 있다. 반정부 시위대는 금요예배가 있던 4일을 ‘(무바라크) 퇴진의 날’ ‘퇴진의 금요일’이라고 정하고, 벼랑 끝에 몰린 무바라크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할 방침이었다. 지난달 25일 시작된 시위 이후 최대 인파(주최 측 100만 명 추산)가 몰렸음에도 이날 시위가 비교적 평화롭게 마무리되면서 무바라크의 즉각 퇴진이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분위기가 다시 바뀌고 있다.

폭력과 약탈이 난무했던 카이로의 상황은 지난 3일부터 다시 안정을 찾아가고 있지만 정상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 시내 곳곳에 기관총을 장착한 전차나 장갑차가 배치돼 있고, 군인들은 착검한 소총을 들고 사람들의 통행을 감시하고 있다. 경찰이 치안을 포기하면서 통금이 시작되는 오후 5시만 되면 동네마다 자경단(自警團)이 마을 입구를 지키는 모습도 여전하다. 각국 공관은 사설 경호원까지 동원해 자체 경비에 나서고 있다.

약탈을 막기 위해 아예 문을 닫았던 상점이 하나 둘 문을 열고 있지만, 물자가 부족한 탓에 가격이 치솟고 있다. 소요 사태 전 1이집트파운드(약 190원)면 달걀 한 줄을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한 개밖에 못 산다. 현금인출기도 일부 작동이 재개됐지만 은행이 문을 닫는 바람에 호텔에서조차 환전이 안 되고 있다. 인터넷은 다시 개통됐지만 여전히 불안정하다.

지금 무바라크의 성채는 불타고 있다. 불길을 피해 관광객은 물론이고 상주 외국인들도 필수 요원만 남고 대부분 빠져나갔다. 교민을 포함, 총 970명에 달하는 상주 한국인들도 300여 명만 남고 대부분 특별기 편으로 철수했다. 역사적인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몰려든 외국 기자들만 시위 현장을 뛰어다니다 봉변을 당하고 있다. 한국 기자를 포함해 수십 명의 외국 기자가 무바라크 지지자들로 추정되는 사람들로부터 폭행과 강도를 당하고, 이들에 대한 표적 폭행은 국제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진화가 힘들 정도로 불길이 번졌는데도 무바라크는 자신이 아니면 불을 끌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과연 그는 진화에 성공하고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을까. 아니면 불이 타 재가 되고 말 것인가. 현재로선 단언하기 힘들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에 대한 지지 여부에 관계 없이 누구도 더 이상 그가 만든 성채에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카이로에 봄은 왔지만 꽃샘 추위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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