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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의 수수께끼 안방마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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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우 석
뉴스위크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의 여자 에바 브라운을 다룬 ‘에바 브라운, 히틀러의 거울’(하이케 B 괴르테마커 지음)이야말로 최근 만난 단행본 중 으뜸이었다. 재미로나, 역사 평전의 무게로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수밖에 없다. 스물세 살 연하의 여성과 20세기 최악의 정치인 사이에 벌어졌던 부적절한 관계라서? 그런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이 단행본은 냉정하고 중립적 성격의 학술서에 가까우니 ‘역사의 스캔들’에만 관심있다면 멀찌감치 피해 가시라.

하이케 B 괴르테마커의 ‘에바 브라운, 히틀러의 거울’

동서고금의 정상적이지 못한 권력이 장막 뒤에서 실제 어떻게 돌아갔는가를 알려주는 도서로 이만한 게 드물다. 이를테면 퍼스트레이디가 없는 권력의 실제 운용을 보여주는 내밀한 정보가 그렇다. 퍼스트레이디, 상징적 권력에 불과하지만 현대 정치에서 없어서 안 되는 요소다. 그런데 당시 제3제국 독일의 퍼스트레이디는 무려 셋이었다. 에바를 꼭꼭 숨겨뒀던 히틀러가 만찬·무도회 등 공식행사에는 그가 총애하는 장관 부인들을 번갈아 등장시켰기 때문이다.

베를린의 빌헬름가 77번지 총리 관저에서 열리는 공식 만찬의 경우 히틀러의 2인자인 괴링의 아내 에미가 분위기를 일단 주도했다. 국립극장 배우 출신답게 우아한 퍼스트레이디 노릇을 곧잘 수행했다고 한다. 막강 권력자 루돌프 헤스의 아내 일제 헤스도 이 역할을 일부 거들었는데, 당시 상류사회 사교계를 주도했던 또 한 명의 여성이 마그다 괴벨스였다. ‘제국의 입’인 선전장관 괴벨스의 아내인 마그다는 우아한 이미지에 사교적 성격이라서 제3제국의 방패막이로 쓸모가 있었다.

실은 마그다 괴벨스야말로 연구대상이다. 확신범 나치 지지자였으며 중앙 권력을 향해 스스로 헌신한 여자다. 본래는 독일 최대 기업의 CEO와 결혼했다가 헤어진 직후 ‘돌싱’이었다. 개인적인 권태감을 벗어나려 했던지 그녀는 히틀러가 막 부상하던 그때 주요 정치행사의 길목을 지킨 채 “나요, 나!”를 외치며 얼굴을 자주 내밀었다. 돈 많고 매력 있는 데다 자기를 지지해주니 응당 히틀러의 눈에 띄었다. 그녀의 쓰임새를 내다본 히틀러는 뭔 생각인지 그녀와 괴벨스 사이에서 중신아비 노릇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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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 브라운은 국립극장 배우 출신답게 우아한 퍼스트레이디 노릇을 곧잘 수행했다고 한다.

그 결과 다리를 가볍게 절었다는 괴벨스와 마그다는 1931년 말 결혼했다. 뒷얘기에 따르면 마그다가 진짜로 사모한 사람은 히틀러였으나, “지도자 곁에 머물기 위해 절름발이 괴벨스와 결혼했다.”(105쪽) 그럼에도 괴벨스는 우쭐댔다. “그는(히틀러는) 여자 복이 없어. 여자는 자신을 지배하는 남자를 따르게 마련이지.” 어쨌거나 이들 세 명의 퍼스트레이디는 남편 못지않게 머리 터지게 경쟁하던 사이였다. 하지만 세 명의 퍼스트레이디는 간판에 불과하며, 제3제국의 진짜 주인공은 에바 브라운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기세등등한 2인자의 아내 에미 괴링마저도 ‘젊디 젊은 것’ 에바 브라운에게 연줄을 대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항상 좌절했다. 히틀러가 권력집중 가능성을 내다보고 은근히 견제했기 때문이다. 관계가 원활했던 쪽은 마그다 괴벨스. 마그다 괴벨스와 에바 브라운은 1945년 봄 나치 몰락 때 남편 옆에서 각각 자살했던 지도자급 여자 두 명이기도 하다. 마그다 괴벨스가 “나치의 국모(國母)역할에 앞장선 데 비해 에바 브라운은 대중에게 숨겨진 존재”(106쪽)였으니 알게 모르게 공식·비공식의 역할을 양분한 셈일까?

퍼스트레이디 세 명의 무대가 베를린이라면, 에바 브라운의 거처는 따로 있었다. 그녀는 “오버잘츠베르크의 안방마님”이었다. 오버잘츠베르크는 알프스 기슭의 요새 겸 저택으로 히틀러 후반기 권력의 핵심이었다. 여기에는 괴벨스 등 추종자와 그들 부인으로 득시글댔다. “에바는 늦어도 35년 무렵에는 히틀러 측근 중에서도 가장 탄탄한 지위”(349쪽)를 차지했으며, 추종자와 그 부인들은 그런 그녀에게 잘 보이려고 무진 애를 썼다. 눈여겨볼 점은 오버잘츠베르크의 다소 괴이쩍은, 유례 없는 권력 작동방식이다.

우선 이곳은 공적이면서도 완전히 사적인 공간이다. 히틀러의 후반기 정치·군사적 결정은 이곳에서 이뤄졌는데, 희한하게도 총통 비서실장조차도 히틀러를 면담하기 힘들었다. 그곳의 실세는 총통의 개인보좌관인 빌헬름 브뤼크너, 개인비서 보어만 등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비서실장이 히틀러를 만나려면 그들에게 면담을 애걸해야 했다. “보어만에게 물어보라”가 그곳에서 통하던 유행어였다. 제국의 2인자 괴링, 그의 아내 에미도 쭉정이 신세이긴 마찬가지다. 그들은 오버잘츠베르크의 핵심인사는 아니었고, 초대받는 일도 거의 없었다. 그러면 누가 이곳을 장악했단 말인가?

히틀러 주변과 사저 주변을 관리하는 개인보좌관, 여비서, 사환, 운전사, 경호원, 주치의 등이 당당한 실세였다. 이런 사적 그룹을 이끄는 구심점이 에바 브라운과 그녀를 중심으로 한 몇몇 친구였다. “일종의 동호인 사회”(195쪽)를 구성했다고 보면 된다. 이들의 일상생활 또한 한갓졌다. 함께 식사 혹은 파티를 벌이거나 아니면 전당대회 귀빈석을 차지해 으쓱대는 게 전부인데, 화제도 좀 거시기하다. 사냥, 건축, 패션, 개 키우기 혹은 영화와 오페라를 중심으로 한 클래식 음악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정치 이야기는 별로 없었다. 그러면 정치가 배제됐단 말일까? 아니다. 배제라기보다는 서로 암묵적 공유를 했었다. 에바 브라운은 이 사적 그룹의 여주인이었다. 독재자의 사랑을 받은 사람도 이 여성이었다. 히틀러가 그녀를 언급할 때면 배려와 존중을 잃지 않았다. 물론 그들의 사후 60여 년 아직도 의혹이 수두룩하다. 둘의 관계가 구체적으로 어땠는지, 심지어 실제로 이들이 일상적으로 섹스를 했는지의 여부도 불투명할 정도다. 실제로 히틀러의 성격 자체가 컴컴한 구석이 참 많다.


이 때문에 ‘에바 브라운, 히틀러의 거울’은 딱 이거다 하고 짚어줘서 독자의 속을 후련하게 만들어주진 않는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데 하면서 뒤로 빼는 스타일이지만 무언가 그림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제3제국 연구의 사각지대로 남았던 여성 부문 복원의 첫 삽을 뜨기가 어디 쉬울까? 에바 브라운의 스타일과 성격 그리고 행동반경을 보여주는 숱한 증언을 모아놓고 판단을 독자에게 일임하는 방식도 이 책의 특징이다.

“그가 앞에 나서는 일은 드물었다.” “무대 뒤에서 다른 이를 도왔다.” “직원 복지에 무관심했다.” “애써 히틀러와 거리를 두려하는 인상이었다.” “히틀러에게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에 불과했다.” “뮌헨의 평범한 아가씨다.” “히틀러가 결국 무식하고 무모했던 것도 결국은 그녀의 책임이다.” 과연 무엇이 진실일까? 히틀러는 그녀를 진정 사랑했을까? 그리고 에바 브라운은 의심 많고 정서불안의 독재자에게 딱 맞는 수준의 백치미 여성에 불과할까? 이런 의문은 이어지는 다음의 부속 기사에서 풀어보자.

[필자는 문화평론가다.]

■ 그녀는 권력의 희생양? 멍청한 백치녀?

‘에바 브라운, 히틀러의 거울’이 주는 암시는 무척 많다. 그중 핵심이 나치 제국이 순전히 남성적 산물이며, 나치 치하의 여성들은 반인륜적 죄악으로부터 면제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완전히 무너뜨린 점이다. 선전장관 괴벨스의 아내 마그다가 소신파였듯이 나치 독일에서 짭짤했던 쪽은 오히려 여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에바 브라운의 경우도 그렇다. 그녀는 히틀러 뒤에 숨은 가련한 여자, 혹은 그림자 여인이 아니다. 비정치적 여성은 더더욱 아니다. 독재자에게 딱 맞는 수준의 백치미 여성이라는 고정관념도 실은 잘못이다. 왜? 히틀러에게 먼저 접근하고 열렬하게 달려든 사람은 에바 브라운이었다. 둘의 첫 만남은 1929년 뮌헨. 그건 다분히 우연이었다. 열일곱 살 에바 브라운은 사진 스튜디오의 보조 직원이었는데, 스튜디오 주인장이 하필 히틀러의 전속사진사였다. 이후 6년 뒤 1935년 에바 브라운은 히틀러 권력의 안방마님 자리를 꿰찼다. 그 사이에 무슨 드라마가 있었을까?

둘 사이의 첫 섹스는 1932년께. 하지만 바로 끈끈한 관계로 돌입하지는 않았다. 초창기에는 다소 시큰둥했다. 그걸 후끈하게 만든 쪽은 에바 브라운인데, 우선 1933년 권총으로 자살시도를 한다. 이게 다분히 계획적인 쇼, 즉 목숨을 담보로 한 애정표현이었다. 정치활동에 바쁘던 히틀러에게 “여기 내가 있다”고 알려주려는 초강력 메시지였다. 이때 히틀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차, 이 여자를 잘못 관리하다간 내 사생활이 노출되고 일이 복잡해지겠구나! 이후 “느슨하던 둘 관계는 확고하게 결속”(77쪽)됐다. 그게 전부는 아니다. 또 한 번의 드라마가 있었다. 2년 뒤 에바 브라운은 수면제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 전에 히틀러에게 편지를 보내 자기의 의중을 분명히 했다. ‘에바 브라운, 히틀러의 거울’ 저자에 따르면 그건 달콤한 권력, 그러나 그 안에서의 고독을 맛보던 그녀가 저질렀던 충동적 행동이라기보다는 “(히틀러를 겨냥한 또 한 번의) 압박 수단”(138쪽)이다. 어쨌거나 그 직후 둘 사이의 관계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애인관계로 발전했으니, 에바 브라운은 자기 목숨을 담보로 독재자의 마음을 움켜쥐는데 성공했다. 이제 앞서의 의문은 다소 풀린다. 에바 브라운은 권력에 희생된 가련한 여인이나, 그림자 인물이 결코 아니다. 머리 나쁜 백치미 여성이란 주장도 별로 설득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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