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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보균의 세상탐사

무바라크 키파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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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편집인

공포는 독재를 배양한다. 공포는 체제의 권위와 존경심을 생산한다. 대중의 저항심리를 제거한다. 감정의 전이(轉移)기술이다. 그것은 장기 독재자의 핵심 통치 기량이다. 반독재 궐기는 두려움의 집단적 극복과 각성에서 출발한다. 이집트 시민들은 권력 공포의 장벽을 부쉈다. 호스니 무바라크(Hosni Mubarak) 철권통치의 중압감에서 벗어났다.

 이집트 경찰은 공포의 집행자다. 경찰의 보안 검열 조직이 사회를 통제한다. 군중은 이제 그 위압적 공권력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무바라크에 대한 존경심도 날려 보냈다. 그의 근엄한 초상화는 조롱의 낙서로 찢겨졌다. 30년 장대한 권력에 대한 공포와 존경심의 해체 현상이다. 정변(政變)의 조건이 성숙된 것이다. 권력 부패, 빈곤, 부자세습 독재에 대한 시민의 거대한 분노는 거침없이 표출되고 있다.

 운명은 군부에 달려 있다. 이집트의 군은 경찰과 다르다. 군은 애국적 엘리트의 전통과 평판을 확보하고 있다. 시민들은 경찰을 미워한다. 군을 신뢰한다. 수도 카이로의 중심가 타흐리르(Tahrir·해방)광장. 그곳에 출동한 탱크의 포신 위에 시위대가 걸터앉아 있다. 수만 군중은 “무바라크 키파야(Kifaya·충분하니 퇴진하라)”를 외친다. 군인들은 지켜보고 있다.

 그 장면은 1989년 루마니아 대통령 차우셰스쿠의 몰락을 떠올린다. 그 체제는 대중의 공포와 존경심을 기괴하게 섞어 유지됐다. 그때 수도 부쿠레슈티의 혁명광장은 수만 군중으로 차 있었다. 발포명령이 내려졌다. 군부는 진압 명령을 외면했다. 군인들이 시민에 합세했다. “군대는 우리 편이다”는 함성이 터졌다. 그 구호는 유혈의 긴박한 대치 속에서 장엄한 파괴력을 가졌다. 그것으로 차우셰스쿠의 24년 공산독재는 처형으로 마감했다. 혁명 광장에는 여러 기념비들이 있다. “군대는 시민을 위해”라는 글귀의 비석은 강렬하게 다가온다.

 이집트 군부는 성명을 발표했다. “군은 국민들에게 무력을 사용한 적이 없다”-. 군부는 폭압적 진압을 선택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군부가 해산 명령을 거부하면 독재정권은 무너진다. 지난달 튀니지 사태가 그랬다. 24년 집권자는 국외 탈출을 했다.

 카이로 민심의 바탕에는 가난의 절망과 일자리의 갈망이 자리한다. 79년 이란의 호메이니 종교혁명과 다르다. 이슬람 원리주의들이 주도하지 않고 있다. 이집트의 빈부격차는 극심하다. 공식 실업률은 9%다. 하지만 실제는 30% 정도라고 한다. 청년 실업률이 유난히 높다. 카이로 거리는 일자리 없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신호등, 횡단보도가 드물어 당황한다. 자동차와 자전거, 사람들이 함께 북적댄다. 당나귀 위에서 휴대전화를 거는 젊은이들이 눈에 띈다.

당나귀와 휴대전화의 기묘한 조화-. 아랍과 민주주의는 공존하지 못했다. 아랍은 시민사회의 경험이 부족하다. 그 기묘함이 정치·문화적 불일치를 깨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위력이다.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도 그랬다. 중동국가 중 이집트에 휴대전화가 가장 많이 퍼져 있다. 젊은 세대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익숙하다. SNS 수단으로 그들은 좌절과 저항을 집결시켰다. 디지털 거사(擧事)다. 역사는 의외의 환경에서 극적 드라마를 연출한다.

 청년 실업은 정정(政情) 불안의 요소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 때 젊은 층 다수가 이명박 정권을 비판했다. 그 주요 이유는 일자리 부족이다. 2012년 대선에서 청년실업과 일자리는 핵심 이슈가 될 것이다.

 이집트와 북한의 과거 관계는 특수하다. 이스라엘과의 4차 중동전쟁(73년 10월) 승자는 이집트다. 오랜 패배의 수모에서 벗어났다. 그때 영웅이 공군사령관 무바라크다. 북한은 무기와 전술을 지원했다. 카이로의 시타델은 관광명소다. 그곳에 군사박물관이 있다. 90년부터 3년간 그 박물관은 중축됐다. 김일성 정권이 경비를 지원했다. 벽에 이런 내용의 한글 동판이 있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과 애급아랍공화국 인민들 사이의 협조의 상징···”이라고 써 있다. 애급(埃及)은 이집트의 한자어다.

 이집트 시위는 북한에 미묘한 파장을 던질 것이다. 하지만 북한 주민은 권력 공포의 사슬에 매여 있다. 김정일 정권은 사태를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이집트는 아랍의 중추다. 아랍권의 정치·문화·역사의 중심이다. 이집트의 변혁은 세계사적 의미를 지닌다. 21세기 역사는 결정적 기로에 있다.

박보균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