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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엑소더스 … 부유층 해외 피신, 한·미·중·일은 자국민 철수 전세기 급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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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달 25일 시작된 이집트의 반정부 시위가 엿새째를 맞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각 나라에서 온 방문객들이 이집트를 떠나기 위해 카이로 공항에 몰려 있다. 현재 카이로 공항으로 들어오는 비행기는 결항연착되고 있다. 일본미국중국 등은 전세기를 이집트에 보내 자국민 이송에 적극 나서고 있다. [카이로 AFP=연합뉴스]


반정부 시위가 안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이집트의 일부 부유층이 국외로 탈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각국 정부가 전세기를 동원하거나 여행 자제 조치를 내리는 등 자국민 보호에 나서고 있다.

 시위에 따른 피해를 두려워한 일부 이집트 부유층은 자가용 비행기나 소형 전세기를 빌려 타고 해외로 대피했다. AP통신은 카이로공항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지난달 29일 하루에만 이집트 통신업계 거물인 나기브 사위리스 오라스콤 회장과 호텔 재벌이자 무바라크 대통령의 측근인 후세인 살렘 일가 등 부유층을 태운 19대의 자가용 항공기가 카이로를 떠났다”고 보도했다. 이 통신은 “대부분의 비행기는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로 향했다”고 전했다. 일부는 혼잡한 공항에서 장시간 대기한 뒤 일반 여객기를 타고 유럽 등 해외로 출국했다.

 외국인들의 탈출도 러시를 이루고 있다. 미국은 이날부터 대피를 희망하는 국민에게 정부의 전세 항공기를 제공했다. 제니스 제이컵스 미 국무부 차관보는 “대피 지역으로 이집트와 가깝고 치안이 비교적 좋은 그리스·터키·키프로스 등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 외무성은 31일 이집트에 있는 자국민을 이송하기 위해 카이로와 이탈리아 로마를 연결하는 왕복 전세기를 이집트로 보냈다. 일 외무성은 500여 명의 현지 국민을 출국시키기 위해 중동에서 전세기 3대를 확보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이집트 영사관 앞에서 이집트 출신의 도아 케드르가 어린 딸을 안고 이집트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휴스턴 AP=연합뉴스]

중국도 이집트 거주 자국민을 철수시키기 위해 31일 자국 항공사 소속 전세기 2대를 카이로 공항으로 보냈다. 중국 외교부는 현재 “개인과 단체를 불문하고 이집트에 절대 가지 말 것”을 주문하는 특별 경계령을 내리고 있다. 홍콩 정부도 이집트에 대해 ‘여행금지’에 해당하는 ‘흑색 경보’를 발령했다. 호주도 ‘긴장과 시위가 고조되고 있는 이집트로 여행을 하지 말라’며 여행 금지 수위를 최고 단계로 격상시켰다. 아제르바이잔은 주카이로 대사관 직원 한 명이 지난달 29일 시위 현장에서 숨진 것으로 확인되면서 다음날 현지 자국민에게 철수 명령을 내렸다. 아울러 자국민을 대피시키기 위해 특별기 1대를 보냈다. 독일 외무부는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수에즈 등에 여행경보를 내렸지만 홍해 인근 휴양지는 안전하다고 판단해 경보를 내리지 않았다.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자 이집트 당국은 지난달 30일 접경지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연결된 라파 국경 통과소를 폐쇄했다. 이집트 당국의 조치는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재소자 일부가 이날 집단 탈옥한 뒤 가자지구로 넘어간 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가자지구를 통치 중인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는 “이번 조치는 환자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통행자에게 피해를 준다”며 “이집트는 국경 개방을 고려하라”고 요구했다.

한편 이집트국립박물관은 지난달 30일 박물관에 난입해 미라 2개의 머리를 자른 괴한 9명이 붙잡혔다고 밝혔다. 이날 경찰은 시위대의 도움을 받아 괴한을 체포했으며 이들이 훔친 유물도 회수했다. 박물관 측은 현재 박물관은 안전하며 손상된 문화재는 복구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AFP통신은 “올해 노벨평화상 후보에 아랍권의 반정부 시위 지도자들이 오를 수 있다”고 31일 보도했다. AFP는 노르웨이의 역사학자 겸 노벨상 전문가인 아슬레 스벤을 인용해 “뉴스의 중심이 된 사건들이 수상자 선정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튀니지와 이집트 등 아랍 독재정권에 대항한 인사들이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를 수 있다”고 전했다.

도쿄·홍콩=박소영·정용환 특파원
서울=이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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