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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무바라크 리스크 … 한국의 선택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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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강찬호
정치부문 기자

1979년 초. 54년간 이란을 지배해온 친서방의 팔레비 왕정이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으로 무너지자 국내에도 큰 한파가 닥쳤다. 이란발 2차 오일 쇼크로 유가가 급등하면서 승승장구하던 경제에 적신호가 켜졌다. 불황은 8년차에 접어든 유신정권에 대한 국민적 저항의 한 요소가 됐다. 멀고 먼 지역으로만 생각되던 중동 정세가 한국에 직접 영향을 미친 사례다.

 32년 만에 중동에 또 한번의 격변이 일고 있다. 튀니지에서 발화해 이집트로 옮겨붙은 반정부 민주화 움직임은 이란 혁명 이래 초유의 대사건이다. 이집트는 인구 8000만 명의 대국으로 아랍 21개 국가를 이끌고 있는 중동 정치의 맹주다. 친미 노선 아래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고 중동 질서를 유지해온 버팀목이기도 하다. 이집트가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에 넘어가면 중동 정세는 아무도 점치지 못한다. 무바라크 대통령 집권 30년 만에 터진 민주화 시위에 온 세계가 이목을 집중하고 있는 이유다.

 우리 정부는 이집트 상황을 예의 주시하면서 1000여 교민 보호 대책을 다각도로 준비 중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그러나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이번 사태가 중동 정치판의 근본을 바꿀 가능성까지 감안한 장기적인 전략 마련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당장 금융시장이 출렁이고 있다. 민주화 시위의 도미노가 부를 수 있는 유가 상승 우려 때문이다. 아직 무바라크가 건재한 상황에서 이 정도라면, 이집트가 혼란에 빠질 경우엔 어떻겠는가. 외교통상부와 지식경제부 등 관련 부처의 적확한 정세 진단과 장기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

 이란 혁명 당시 정부는 새로 들어선 이슬람 정권에 대해 미국 주도의 반(反)혁명 노선에 따라 등을 돌리는 것 외엔 대안을 마련할 의지도, 여유도 갖지 못했다. 그 결과 대사급이었던 이란과의 외교관계는 대리대사급으로 격하됐다. 황금시장인 이란과의 관계가 정상화(89년)되기까지는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지금 중동에서 한국의 덩치와 존재감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커졌다. 미국·서방과 협조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역내에서 우리의 국익을 유지·발전시킬 전략 마련에 힘쓸 때다. 무바라크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아들 가말에 대한 권력 승계 계획에서 촉발된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것이 좌절되자 무바라크는 군부 출신의 최측근인 오마르 술레이만을 부통령으로 임명해 사실상의 후계로 내세웠다. 비록 정치체제, 처한 환경은 다르지만 북한의 3대 세습이 삐걱거릴 경우 많은 시사점을 던져줄 수도 있다.

 강찬호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