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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 最古 세계지도…복원된 15세기 조선 ‘글로벌 DNA’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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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일본 류코쿠대가 첨단 디지털 기술로 복원해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에게 기증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디지털 복사본. 가운데 부분이 중국. 그 왼쪽으로 아라비아 반도, 아프리카 대륙, 유럽대륙이 표현돼 있다. 한반도는 실제 크기보다 크게 그려져 있다. [최선웅 제공]

고지도 발굴·연구의 권위자인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은 최근 한 일본인 학자로부터 진귀한 선물을 받았다. 학술행사 협의를 위해 서울을 찾은 히라타 아쓰시(平田厚志) 류코쿠(龍谷)대 도서관장으로부터다. 포장을 열어 본 최 원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15세기 한국인이 남긴 명품 중의 명품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약칭 강리도)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비록 복제본이었지만 유려한 채색이나 살아 꿈틀대는 듯한 필치는 수년 전 류코쿠대에서 열람했던 원본보다 더 생생했다. 류코쿠대가 꼬박 10년 동안 첨단 디지털 기술로 원본에서 색이 바래고 어두워진 부분이나 판독하기 어려워진 글자까지 ‘디지털 공간에’ 말끔히 복원해 낸 결과다. 한국인의 손으로 만들었으나 한국땅에는 남아 있지 않던 강리도가 디지털 기술로 되살아나 한국에 온 것이다.

강리도는 세계 학계가 공인하는 현존 최고(最古)의 세계지도이며 15세기 지도로는 동서양을 통틀어 최고의 완성도를 가진 것이다. 제작 시점인 1402년 당시 인류가 알고 있던 세상의 전부가 들어 있다. 1492년 콜럼버스에 의해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되기 전이라 지도에는 아시아·유럽·아프리카 대륙이 그려져 있다. 비례는 맞지 않지만 해안선 모양은 오늘날 지도와 거의 일치한다.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서양의 고지도 관련 학술서적들도 강리도를 표지에 실을 정도다.

가로 168㎝, 세로 158.5㎝의 비단에 그려진 채색지도인 강리도는 태종 2년인 1402년에 제작됐다. 당시의 모든 지도가 그렇듯 이 지도 역시 100% 실측에 의해 만든 지도가 아니라 당시의 지리 지식과 정보를 모두 취합해 만든 합성지도다. 지도 아래 적혀 있는 조선 초기 관료 권근(權近)의 발문에 따르면 원나라 때의 것으로 추정되는 성교광피도(聲敎廣被圖)와 혼일강리도(混一疆理圖)에 한반도 지도인 팔도지도(八道地圖)와 일본 지도인 행기도(行基圖)를 합성해 만든 것이다.

이 강리도는 조선 초기 한국인에게 ‘글로벌 코리아’의 유전자가 형성돼 있었음을 입증해 주는 생생한 증거물이기도 하다. 한국지역지리학회장을 지낸 양보경 성신여대 교수는 “한국인이 남긴 문화유산 가운데 가장 경쟁력 있는 문화재 하나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강리도를 들겠다”고 말한다.
한국인이 남긴 문화유산의 상당수가 그런 것처럼 강리도 또한 일본에만 남아있다. 임진왜란 때나 메이지 시대 초기에 건너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류코쿠대 측은 여태까지 보존 문제 때문에 원본 공개를 매우 꺼렸다. 한국인 연구자가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이찬(2003년 작고) 전 서울대 교수가 1982년 입수한 사진을 바탕으로 동양화가와 서예가에 의뢰해 모사해 서울대 규장각에 기증한 게 전부였다. 그러나 아무리 정밀히 모사했다 해도 원본과의 차이는 불가피한 것이었다. 지도제작업체 매핑코리아의 최선웅 사장은 “모사본도 정밀하게 그린 것이지만 지도 형태나 필체에서 이번에 온 디지털본과 비교해보니 원본과는 약간 차이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 건네받은 디지털 강리도는 실물을 그대로 복제한 것일 뿐 아니라 오히려 첨단 기술을 가미해 훼손된 부분까지 복원한 것이다. 류코쿠대 이공학부는 3억5000만 화소 이상의 초고정밀 디지털카메라와 형광엑스선분석기 등의 첨단 장비를 활용해 2000년부터 10년 동안 복원에 매달렸다. 그 결과 원본에서는 희미하게 보였던 중국의 만리장성이나 아무르 강을 그린 선을 선명하게 되살려냈다. 양보경 교수는 “모사본 제작 당시 판독이 힘들었던 중국 지명 등은 잘못 써 넣은 것도 있는데 디지털 복제본을 통해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디지털 강리도를 전달받은 최 원장은 실물 크기의 복제본을 만들어 학계와 관련 단체에 제공할 계획이다.

예영준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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