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아프리카 해안·희망봉 정확히 묘사...유럽인들의 발견보다 86년 앞서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03호 10면

1482년 요하네 슈니처가 만든 세계지도. 아프리카와 남극이 연결돼 있고 인도양과 대서양은 분리돼 있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가 세계 지리학계에서 명품으로 극찬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동시대의 다른 지도와 비교해보면 이해가 한결 쉬워진다. 강리도보다 80년 뒤인1482년 독일의 요하네 슈니처가 만든 세계지도를 보자. 이는 고대 그리스의 천문지리학자 프톨레마이우스(톨레미)의 지도를 계승한 15세기 유럽 지도의 대표작이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아프리카 대륙이다. 남쪽 부분이 남극과 곧바로 닿아 있고 바다는 아프리카 대륙에 가로막혀 쪼개져 있다. 그러니 이 지도를 보고서는 대서양에서 인도양으로 나가는 바닷길을 상상도 할 수 없다. 당시 유럽인들은 아프리카 남단은 세상의 끝이며 따라서 인간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죽음의 땅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혼일강리도’의 역사적 의미

하지만 강리도를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프리카 남단이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 형상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지리 상식과 일치한다. 비록 대륙의 크기가 실제보다 작게 그려져 있긴 하지만 해안선의 윤곽은 오늘날의 지도와 큰 차이가 없다. 1488년 유럽인이 아프리카 최남단에서 희망봉을 발견한 것보다 86년이나 앞서 희망봉의 존재를 정확하게 그려낸 사실이 놀랍다. 강리도를 보면 전 세계가 바다로 연결돼 있어 이 세상에 배를 타고 가지 못할 곳은 없다.

아프리카 땅을 밟아 본 일이 없는 당시의 한국인들은 어떻게 이런 사실을 알 수 있었을까. 그것은 동서문화 교류의 결과였다. 고지도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유럽인들과 달리 아랍인들은 아프리카 대륙에 대해 비교적 정확한 지리적 인식을 갖고 있었고, 이는 몽골 제국에 의해 동아시아 지역으로 전파되었다는 것이다. 강리도를 제작하면서 참고한 이택민의 성교광피도(聲敎廣被圖)가 원나라의 지도였다는 점이 그런 가설을 뒷받침한다.

강리도는 당시 한국인들의 진취적인 세계관이 투영된 지도다. 중세인들이 알고 있던 세계 즉 구대륙의 전부를 한 장의 지도에 정확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다. 권근은 발문에서 “정연하고 보기에 좋아 문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천하를 알 수 있게 되었다”며 “도적(圖籍)을 보고 지역의 원근을 아는 것은 다스림에 도움이 된다”고 썼다. 강리도보다 150여 년 뒤에 그려진 비슷한 이름의 다른 지도(혼일역대국도강리지도, 인촌기념관 소장)에서는 오히려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 부분이 사라지고 만다. 양보경 성신여대 교수는 “조선 초기의 군주나 관료들이 전 세계를 머릿속에 인식하고 있었지만 성리학 이념이 확고히 뿌리 내린 조선 중기에 접어들면서 세계에 대한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축소되었다”고 설명했다.

강리도의 특징은 한반도의 크기가 실제보다 과장되게 표현됐다는 점이다. 이는 제작상의 실수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의도적인 기획임이 분명하다. 권근의 발문에 “이택민의 지도(성교광피도)에는 요수 동쪽과 우리나라의 강역이 많이 생략되어 있다”며 “특히 우리나라 지도를 넓게 했다”는 부분이 나오기 때문이다. 한반도를 거의 없는 것처럼 축소 표현한 원의 지도에 대한 반발이 작용했을 것으로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이찬 전 서울대 교수(2003년 작고)는 1991년에 펴낸 『한국의 고지도』 서문에서 “강리도는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서 탈피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양보경 교수의 해석도 비슷하다. 그는 “조선이 중국 못지않게 크고 안정된 나라란 사실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만든 것”이라고 본다. 오상학 제주대 교수의 견해도 같은 맥락이다. 오 교수는 “이슬람 사회에서 전래된 지리 지식을 바탕으로 유럽·아프리카 등 조선과 전혀 교류가 없던 지역까지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직방세계, 즉 세계는 ‘중국과 중국에 조공을 바치는 나라들로만 구성됐다’는 인식을 뛰어넘었다”고 평가한다. 오 교수는 “강리도를 ‘중화적 세계관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한 국사 교과서의 기술을 고쳐야 한다”고 했다.

중국을 지도의 중심에 두고 가장 크게 그렸다고 해서 중화적 세계관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라 보는 것은 평면적인 해석일 수 있다. 정밀 측량에 의한 객관성을 중시하는 현대 지도와 달리 고지도에는 당대인들의 세계관과 철학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고지도 연구·발굴에 일생을 바쳐 온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이 “고지도는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라 강조하는 이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