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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월 만에 지사직 잃은 이광재 “박연차, 약속대로 증인 나왔 더라면 … 실망스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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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도지사직을 상실한 이광재 강원도지사가 27일 직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강원도청사를 나서고 있다. [변선구 기자]

이광재 강원도지사는 27일 오후 대법원 판결 소식을 듣고 강원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판결에 대해 “절차와 결과가 실망스럽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당선 직후 법정에 나오겠다던 박연차씨가 증인으로 출석을 했다면, 또 사실을 써서 대법원에 제출하겠다는 약속을 박연차가 어기지 않았으면 진실이 밝혀졌을 것”이라고 결백을 주장했다.

 이 지사는 이날 오전 내내 오대산 상원사와 월정사에 머물다 지사직 상실 소식을 들은 뒤 강원도청을 찾았다. 그는 “지사직을 잃어서가 아니라 강원도와 강원도민을 지켜 드리지 못해 참 슬프고 죄송하다”며 “용기를 잃지 말고 힘을 내달라”고 했다. 도청 공무원들에게는 “함께한 시간이 행복했다”며 “두 배, 세 배 열심히 일해 달라”고 했다.

 그런 다음 “(나는)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의연하게, 모진 바람에도 태백산의 주목(朱木)처럼 살겠다”고 했다. “어려웠던 시절 덩샤오핑의 책을 많이 봤다”고 한 그는 “하늘이 넓다고 해도 새가 날아가는 길이 있고 바다가 넓다고 해도 배가 가는 길이 있다. 천천히 그 길을 개척해 나가겠다”며 회견을 마무리했다. 그런 그에게 기자들이 ‘정치인의 길을 계속 갈 것이냐’고 묻자 고개를 떨어뜨린 채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이날의 대법원 판결로 이 지사의 ‘진일보’는 멈췄다. 그의 피선거권이 앞으로 10년간 제한된다. 그는 지난해 9월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재판이 도정을 이끌어가는 데 심리적으로 영향을 주지 않나’라는 질문을 받고 “그런 부분이 나를 흔들리게 할 정도로 내가 약하진 않다. 백척간두에서도 진일보해서 살아간다는 게 기본 철학이다”며 의기양양하게 대답했었다.

 이 지사와 검찰의 관계는 악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2004년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고향인 태백-영월-평창-정선 지역구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러나 최도술 전 비서관, 안희정 충남지사 등과 함께 ‘불법 대선 자금’으로 특검 조사를 받았다. 2008년 18대 총선에선 50%가 넘는 지지율로 재선에 성공했지만 검찰과의 악연은 이어졌다. 2008년에는 전군표 전 국세청장 인사청탁 로비사건으로, 2009년에는 강원랜드 비리 의혹사건으로 수사를 받은 것이다.

 당시 증거 불충분으로 사법처리를 면한 그는 2009년 3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 정대근 전 농협회장으로부터 2억2000만원 상당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그럼에도 그는 만만찮은 정치적 생존력을 보여줬다. 보석으로 풀려난 그는 재판을 받던 상황에서도 지난해 6·2지방선거에서 민주당 강원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것이다. 하지만 기염을 토한 지 7개월 만에 지사직을 박탈당했다.

 그의 정치운명은 오랜 동지인 안희정 충남지사와 비교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당선시킨 핵심 참모로 ‘우광재, 좌희정’으로 불렸던 두 사람 가운데 안 지사가 먼저 비운을 겪었다. 안 지사는 노 전 대통령이 취임한 첫해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형량을 모두 채운 다음 출소했다. 그 후 그는 노 전 대통령에게 폐를 끼치기 싫다며 참여정부 임기 동안 공직을 맡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이 지사는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등 정치적으로 쑥쑥 성장했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이 지사의 ‘진보’엔 브레이크가 걸렸고, 안 지사는 충남에서 민주당의 젊은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크고 있다.

글=이찬호·강기헌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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