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기업 동물병원 청담동에 연다는데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다음 달 초 서울 청담동에 문을 여는 대형 동물병원을 놓고 골목상권 침해 논란이 한창이다. 동물병원을 세우는 대기업 측은 “명품 서비스를 요구하는 고객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주변 수의사들은 “소규모 동물병원 시장을 독식하려는 대기업의 횡포”라고 맞서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해 여름 동물사료 및 밀가루 생산업체인 대한제분이 신사업으로 대형 동물병원 체인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대한제분은 최초의 반려동물 전문기업을 표방하며 DBS라는 회사를 세웠다. DBS가 운영하는 동물병원 체인 이름을 ‘이리온’으로 정하고, 1호점을 부자동네로 소문난 청담동의 옛 엠넷방송국 건물 1∼2층에 열기로 했다.

 DBS는 지난해 10월 프랑스 명품업체인 샤넬 코리아 등에서 명품 마케팅을 담당했던 박소연(42)씨를 대표이사로 영입하고, 고양이 전문의를 비롯해 10여 명의 수의사를 스카우트했다.

 박 대표는 “반려동물 문화의 성숙과 함께 반려동물 토털 서비스를 요구하는 고객이 늘고 있어 이들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설치되는 의료기기만 해도 사람이 다니는 종합병원 못지않다. CT(컴퓨터단층촬영)와 초음파 기기 등을 들여놓는 데 15억원이 투입됐다.

 그는 “동물병원에 가면 진료비가 비싸다고들 하는데, 문제는 수의사들이 왜 비싼지를 단계별로 설명해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며 “삼성서울병원이 종합병원업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듯이 차원 높은 의료서비스를 펼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박 대표는 “일부 수의사가 우려하는 것과 달리 진료 수입은 전체의 절반에 불과하다”며 “우리는 반려동물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놀이터와 쉼터 역할에도 비중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면 용변을 가리지 못하거나 자주 시끄럽게 짖는 반려동물이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하는 교육 서비스, 낮 시간 동안 혼자 있는 반려동물을 보호하는 유치원 서비스, 소형견·대형견·고양이로 구분된 호텔 서비스, 스파를 포함한 미용 서비스,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족들이 함께 모여 쉬면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카페 서비스 등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수의사회는 우려를 넘어 반대입장을 명확히 밝히고 나섰다. 서울시수의사회 곽중권 회장은 “DBS의 경영방식과 마케팅은 동네 동물병원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생명을 다루는 일이 대자본의 논리에 의해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의지로 대기업의 동물병원 설립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수의사회는 반대서명운동을 펼친 뒤 서명지를 대한제분과 서울시·농림수산식품부 등에 전달했다. 좀 더 구체적인 행동지침은 오는 30일 서울시수의사회 회장선거를 거쳐 당선자의 공약으로 결정된다.

  심재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