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스페셜 리포트] 베트남서 온 ‘게욱’ 제주서 자란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뉴질랜드산보다 조금 더 통통한 타원형이다. 속은 샛노란 황금색, 껍질에 털이 없어 깔끔한 모습이다. “당도로 보나 모양으로 보나 뉴질랜드산보다 훨씬 낫습니다.” 성기철(53·사진) 농촌진흥청 온난화대응농업연구센터(온난화센터) 연구관이 키위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제시 골드’라는 이 키위는 농진청이 개발한 국산 품종이다. ‘한라 골드’라는 품종과 함께 지난해 100t 가까이 생산됐다.

 국산 열대 농작물이 다양해지고 있다. 농진청은 골드키위를 비롯해 망고·패션프루트·인디언시금치 등 15가지 열대·아열대 작물을 도입해 국내 적응 기술 개발을 완료했다고 27일 밝혔다. 제시 골드처럼 한국 기후에 맞는 품종을 따로 개발하기도 하고 작물 재배를 손쉽게 하는 기술을 개발해 보급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성 연구관은 온난화센터에서 ‘아열대작물 재배연구실’을 이끌고 있다. 경기 수원시 농촌진흥청 본사에서 근무하던 그가 제주도에 내려온 건 2002년. 온난화센터(2008년 개소)가 채 문을 열기 전이었다. 이 센터의 전신인 ‘난지농업연구소’가 생기면서 채소 전문가인 그에게 소장이 손을 내민 것이다.

 그가 선뜻 제안을 수락한 건 연구 욕심 때문이었다. “채소 연구하는 이에게 제주도는 다시 없는 천국”이라는 것이다. 겨울이 따뜻해 브로콜리 같은 월동 채소를 재배할 수 있다. 열대 작물이 자랄 수 있는 기후도 전국에서 유일하다. 이후 줄곧 제주의 아열대 기후에 맞는 작물을 찾는 데 노력을 집중해 왔다. 유럽과 동남아 일대에서 한국에 들여올 만한 작물을 수소문했다. 아스파라거스 재배 기술을 개발하고 단호박 수확 시기를 앞당기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가 이끌고 있는 아열대작물 재배 연구실은 지금도 30여 가지의 열대 작물을 심어 재배 방식을 연구하고 있다. 그 역시 현재 카레의 원료인 ‘울금’을 노지에서 키우는 실험을 하고 있다.

 아열대 기후가 전국으로 퍼진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열대 작물을 적극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을까. 그는 “지금도 늦은 편”이라고 말했다. 제주도 평균 기온이 지난 100년 사이엔 1.6도 올랐는데 향후 100년 동안은 평균 4~6도가 더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는 연구 결과를 근거로 들었다. “작물 북방 한계선이 점차 올라가고 있잖아요. 따뜻한 날씨에 맞는 품종을 지금 개발해 두지 않으면 키울 수 있는 작물들이 점차 사라집니다.” 지난해 가을 한 달 동안 오키나와 연수를 다녀온 그는 “일본은 오키나와를 통해 열대 작물 재배 연구가 이미 무르익었습니다”라며 “우리도 더 많은 작물을 도입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도입한 작물로 농민들이 고수익을 올릴 때, 고영양 작물 재배에 성공할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최근 베트남 인기 과채류인 ‘게욱’ 재배에 성공했다. 그는 “토마토보다 항암 성분인 리코펜이 70배나 많은 식물”이라며 "이런 다양한 작물을 통해 새 음식 문화가 발전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근의 한파는 제주도까지 영향을 미쳤다. 노지에 심어둔 열대 작물이 얼어 죽곤 한다고 했다. 그는 “이런 날씨가 오히려 기회”라며 눈을 반짝였다. “어떤 품종이 추위에 강한지, 겨울을 날 수 있는지를 실험할 수 있잖아요.” 그는 “영·호남 지방까지 열대 작물을 재배할 수 있도록 다양한 품종과 기술을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미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