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 몰락도 정보사회 등장도 그가 ‘천기누설’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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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의 몰락을 정확히 예언했던 사회학자 겸 미래학자 대니얼 벨(Daniel Bell·사진)이 25일(현지시간)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있는 자택에서다.

 『이데올로기의 종언(The End of Ideology)』이라는 저서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벨은 사회주의의 몰락과 정보·기술산업 사회의 도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기념비적 저술을 많이 남겼다. 사회학과 미래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학자이자 저술가였다. 뉴욕 타임스는 그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지난 70년간 과거를 분석하고 현재를 이해하며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싸워온 지식인의 전형”이라고 묘사했다. 생전의 벨은 자신을 ‘정치적으로는 자유주의자, 경제적으로는 사회주의자, 문화적으로는 보수주의자’라고 표현했다.

 그가 남긴 책 중 가장 유명한 『이데올로기의 종언』은 동서 냉전이 한창이던 1960년 출판됐다. 벨은 이 책에서 “사회주의 이념(이데올로기)이 주도하는 세계가 곧 끝날 것”이라고 예측해 주목을 받았다. 옛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주의 체제 붕괴를 30년이나 앞서 정확히 내다본 것이다. 벨은 이 책에서 ‘산업이 발달할수록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이 첨예해진다’는 사회주의 이론은 맞지 않으며 오히려 산업화가 진행할수록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관계가 극복된다고 강조했다. 또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가가 맘대로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시스템이 복잡하게 발달할 것이라는 내용도 담았다. 마르크스주의가 맹위를 떨치던 시대에 사회주의를 정면으로, 논리적으로 명쾌하게 반박한 그의 책은 전 세계에 번역돼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는 30년 전 이미 정보사회의 등장이라는 ‘천기누설(天機漏洩)’을 했다. 73년 저술한 『후기산업사회의 도래(The Coming of Post-Industrial Society)』에서 농업사회와 산업사회가 지나면 정보와 기술, 과학의 가치가 높아지는 ‘정보사회’가 등장한다고 전망한 것. 정보사회로의 변화는 산업사회가 가진 문제점인 인구 증가·도시화·인구 밀집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필수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정확한 예측 덕분에 벨은 피터 드러커, 앨빈 토플러, 새뮤얼 헌팅턴 등과 함께 대표적인 미래학자와 석학으로 주목받았다.

1990년 7월 한국서 『제3의 기술혁명』을 주제로 강연을 한 대니얼 벨. [중앙포토]

 1919년 뉴욕에서 유대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벨은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자랐다. 10대 때 급진적 성향을 보이기도 했으나 이후 실용주의자의 길을 걸었다. 10대 후반 뉴욕 시립대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던 시절, 벨은 어빙 하우와 네이선 글레이저, 신보수주의의 대부로 불린 어빙 크리스톨 등과 격렬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하우와 글레이저 등은 훗날 각각 유명 비평가와 사회학자로 이름을 날렸다. 이 논쟁은 수십 년 뒤 다큐멘터리로 제작되기도 했다.

 ‘뉴리더’ ‘포춘(Fortune)’ 등의 잡지를 편집하며 언론인으로도 활동했으며 시카고대 교수를 거쳐 컬럼비아대, 하버드대 교수를 지냈다. 또 다른 저서로는 『정보화 사회와 문화의 미래』 『정보화 사회의 사회적 구조』 『제3의 기술혁명』 『교양교육의 개혁』 『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 등이 있다.

민동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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