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조엔 빚 내 연금 적자 메워 … ‘복지 수렁’ 빠진 일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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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초고령화사회 일본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복지비용을 부담하기 위해 2014년 50조 엔(약 680조원) 이상의 새 국채를 발행할 예정이다. 과도한 복지비용이 재정 악화를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후생노동성 발표에 따르면 2009년도 일본의 연간 공적연금 지급 총액이 50조3000억 엔(약 684조원)을 돌파했다. 이는 전년도 대비 2.8%, 10년 전에 비해서는 30% 증가한 것으로 국내총생산(GDP)의 10%를 넘어선 액수다. 공적연금 총액은 국민 전원이 가입한 기초연금과 회사원의 후생연금, 공무원의 공제연금, 기타 복지연금 등을 모두 합한 것이다. 미국의 GDP 대비 연금지급 총액은 6%,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은 7.2%다.

지난해 일본의 연금 수급자는 3703만 명으로 3.1% 증가했지만 연금 가입자는 6874만 명으로 오히려 0.9% 줄었다. 연금 납부자 1.8명이 연금 수급자 1명을 부양하는 꼴이다. <그래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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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구나 일본의 베이비붐(1947∼49년) 세대인 단카이(團塊) 세대 약 700만 명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연금을 받게 된다. 후생노동성 추계에 따르면 2015년 연금 지급액은 59조 엔, 2025년에는 65조 엔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일 정부는 연금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기초연금에 대한 세금 투입 비율을 3분의 1에서 2분의 1로 높였으나 급속한 고령화로 수급자 수가 늘어나는 반면 가입자 수가 감소하면서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또한 연금을 지탱하는 회사원들의 급여가 오르지 않아 연금 납부가 늘지 않는 데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국민연금 미납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다. 보험료를 내지 않는 이유는 실업 혹은 비정규직으로 전락해 수입이 불안정해져서다. 또 몇 년 전 옛 사회보험청이 국민연금기록을 유실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등 정부에 대한 불신도 확산됐다.

 상황이 악화되자 요사노 가오루(與謝野馨) 경제재정상은 최근 정부의 신성장전략실현회의에서 “인생 90 이라는 전제로 정년 연장을 검토하고 있는 마당에 연금 지급 연령을 연장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며 현행 65세인 공적연금 지급 시기를 늦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령화에 따른 사회보장비 증가는 일본의 재정위기를 악화시키는 가장 큰 요인이다. 26일 마이니치(每日)신문에 따르면 2014년 일본의 일반회계 예산 총액이 처음으로 100조 엔(약 1360조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신문은 일본 재무성이 국회에 제출한 일본 재정 추산 보고서를 인용, 2011년도 예산안(92조4000억 엔)에 포함된 사업과 현재의 세제가 유지될 경우 2014년도 일반회계 총액이 100조9000억 엔에 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부족한 재원 충당을 위한 신규 국채 발행액은 54조2000억 엔에 달해 2011년(44조3000억 엔)보다 약 10조 엔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재무성은 “연금과 의료보험 등 사회보장비 부담이 늘어난 데 따른 국채 발행 증가는 장기 금리 상승 등 심각한 폐해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재무성의 이번 보고서는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가 추진하는 사회보장 개혁과 소비세 인상 등 세제 개혁이 하루빨리 진행돼야 한다는 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아동수당 인상과 고교 무상화 등 각종 복지예산을 늘리고 있는 민주당 정부는 세금을 올리고 연금을 줄여 복지정책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여론은 싸늘하다. 출범 초기 70%에 달했던 민주당 지지율은 30%대로 추락했다. 아동수당 인상과 고속도로 무료화·고교 무상화 등의 퍼주기식 복지정책들을 추진하면서 재정에 부담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참의원의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자민당 등 야당은 민주당이 아동수당과 고속도로 무료화 같은 정책을 중단하지 않으면 예산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들고 있다. 40여 개 지방자치단체가 아동수당의 일부 부담을 거부하기로 했다. 민주당은 당초 아동수당 지급을 공약으로 내걸면서 전액 국비로 충당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예산 부족으로 일부를 지방자치단체에 부담시키고 있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단카이(團塊) 세대=일본에서 전후 베이비붐 시대(1947~49년)에 출생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후생노동성 통계에 따르면 그 규모는 700만 명에 이른다. 전후 경제성장을 주도하면서 재산을 모으고 연금을 확보한 연령층이다. 이들이 2007년 일제히 정년퇴직을 맞으면서 ‘2007년 문제’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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