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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시S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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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철호
논설위원

경제신문 귀퉁이의 1단짜리 기사가 눈길을 끈다. 삼성전자가 첨단 스마트폰인 갤럭시S를 중국 톈진(天津) 공장에서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애플이 줄곧 중국에서 아이폰을 만든 것과 견주면 놀랄 일은 아니다. 오히려 한발 늦은 느낌이다. 삼성은 그동안 갤럭시S의 국내 생산을 고집했다. 수퍼 아몰레드 등 첨단 부품의 원활한 공급과 품질 관리를 위해서다. 아직 초기인 만큼 톈진 공장의 생산 비중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이경주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전무)은 “중국 내수용 물량만 넘기며, 전체 생산량의 5%도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쉽게 넘길 사안은 아니다. 짧은 기사의 의미를 제대로 짚으려면 이면(裏面)을 읽는 힘이 필요하다. 우선 임금은 한국의 절반 아래지만 중국의 기술 수준이 몰라보게 높아진 점이다. 삼성의 중국 진출 교두보인 톈진 공장은 경력 5~7년의 숙련 인력이 풍부하다. 지난해 가을엔 풀터치폰 생산에 성공했다. 갤럭시S까지 무리 없을 만큼 품질 관리에 자신감을 얻은 것이다. 톈진 주변의 정보기술(IT) 생태계도 매력적이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범용부품은 국내보다 훨씬 싸고 쉽게 조달할 수 있다.

 보다 근본적 원인은 중국의 급속한 변화에서 찾아야 할 듯싶다. 지난해 아이폰 생산거점인 폭스콘의 선전() 공장은 근로자 연쇄 자살로 파업 사태를 맞았다. 폭스콘은 이를 무마하려 평균임금을 두 배나 올렸다. 그 여파가 톈진까지 밀려왔다. 삼성전자 이 전무는 “구체적인 임금 인상률은 영업비밀”이라며 “더 이상 톈진에서 저가 제품만 생산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중고가 제품의 생산 비중을 높여가야 할 구조다. 삼성은 대안으로 연쇄적인 공장 재배치를 시도 중이다. 톈진에 깔린 저가 제품 라인은 보다 임금이 싼 베트남과 중국 내륙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른바 중국발(發) 2차 태풍이 현재 진행형이다. 중국이 산업구조 고도화를 밀어붙이면서 아시아 산업지도가 재편되고 있다. 중국은 한국의 7~8세대 LCD공장을 끌어당기고,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도 속속 유치했다. 낮은 인건비만 노리는 외국기업은 찬밥 신세다. 중국 임금의 절반 아래인 베트남과 인도로 가차없이 쫓아내고 있다. 중국의 임금인상률은 매년 두 자릿수일 만큼 무지막지하다. 그러고도 “내수(內需)를 키우기 위해 2015년까지 임금을 두 배로 끌어올릴 방침”이라 예고했다.

 이제 중국이 ‘루이스의 전환점’을 통과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노벨상 수상자인 아서 루이스(Arthur Lewis)는 “개발도상국은 농촌의 값싼 인력으로 급속한 산업발전을 이루지만, 임금인상과 저임금 근로자의 고갈로 반드시 경제성장이 둔화되는 변곡점을 맞는다”고 경고했다. 중국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을 모양이다. ‘세계의 공장’이란 위상이 흔들리지 않으리란 자신감이 묻어난다. 사실 넓은 내수시장과 원부자재 조달, 물류 인프라를 따지면 중국을 대체할 마땅한 대안을 찾기도 힘들다.

 지난해 3분기부터 한국 경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높은 경제 성장과 함께 질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는 중이다. 외환위기 이후 10여 년 만에 처음 나타나는 현상이다. 올해 30대 그룹이 113조원을 투자하는 것도 청신호다. 약속대로 이들이 연구개발과 설비투자에 집중한다면 신규 채용 규모는 예년의 두 배인 11만8000명으로 늘어난다. 올 한 해 농사에 따라 향후 10년간 우리 경제의 운명이 판가름 날지 모를 민감한 시기에 접어들었다.

 채 돌이 안 된 갤럭시S가 서해(西海)를 건너간다. 다른 첨단제품들도 언젠가 같은 길을 밟을 것이다. 문제는 그 속도다. 결국 우리의 원심력(遠心力)과 중국의 구심력(求心力) 간의 싸움이다. 첨단산업의 해외 이전 속도를 늦추고, 사상 최대의 투자를 국내로 유인할 청사진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앞으로 먹고살 게 없다면 오늘의 복지 논쟁은 허무한 집안싸움일 뿐이다. 신문 지면을 도배하는 무상시리즈보다, 한 귀퉁이의 작은 1단 기사에 신경이 곤두서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