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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천사’ 요세프 멩겔레(4)

중앙일보

입력

“It can also build gigantic intellectual ships, but it constructs no moral rudders for the control of storm tossed human vessel. It not only fails to supply the spiritual element needed but some of its unproven hypotheses rob the ship of its compass and thus endangers its cargo.

그것(과학)은 지식으로 가득 찬 거대한 선박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폭풍으로 휩싸인 인류라는 배를 통제할 수 있는 도덕적 방향키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그것은 필요한 정신적인 요소를 제공하지 못 할뿐만 아니라 증명되지 못한 일부 가설들은 (위험에 처한) 선박에서 나침반을 뺏어버리고 배에 실린 화물들을 위험에 빠트리고야 만다. –윌리엄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 1860~1925) 미국 정치가, 국무장관, 변호사-

물론 이 말은 진화론에 대해 반기를 든 이야기다. 미 국무장관을 지낸 브라이언은 다윈의 이론은 순전히 가설에 불과하며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못한 내용으로 오히려 사람들의 도덕과 윤리를 구렁텅이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진화론에 적극적으로 반대하기도 했지만 과학이 가져올 위험성을 경고하는데도 앞장섰다.

미국이 1940년대 과테말라에서 페니실린의 효용성을 검증하기 위해 교도소, 정신병원 등에 수감된 1600여명에게 고의로 매독균 등을 감염시키는 실험을 실시한 사실이 2010년 뒤늦게 밝혀졌다. 당시 미국 언론에 따르면 당시 실험은 1946년부터 1948년까지 실시됐다.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생체실험부대인 731부대를 지휘한 이시이 시로(石井四郞) 중장. 맥아더 장군은 그에게 모든 혐의를 벗겨 주었다. 그는 대학 총장까지 지냈다.

실험 대상은 과테말라 교도소에 수감된 남성과 정신병원에 수용된 남여 환자 1600여명으로, 696명에게 매독균, 772명에게 임질균, 142명에게 초기 매독균을 주사하거나 성병에 감염된 매춘부를 교도소 수감자들과 접촉시키는 방법으로 성병을 전염시켰다.

이같은 사실은 매사추세츠주 소재 웰즐리 칼리지의 수전 레버비(Susan Reverby) 교수가 미국 앨라바마주의 터스키기(Tuskegee)에서 이뤄진 생체실험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터스키기 실험이라고 부르는 이 생체실험은 1932년부터 1972년까지 40년 동안 매독 연구를 진행하고 있던 미국 공중보건국이 터스키기 지역 흑인들을 대상으로 치료하지 않은 매독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관찰하기 위해 이뤄졌고, 이 같은 끔찍한 사실이 폭로되자 1973년 실험은 중단했다. 이 매독 생체실험은 터스키기 실험을 주도한 미국 공중보건국의 존 커틀러 박사의 책임하에 실시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자 미국 정부는 과테말라 측에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알바로 콜롬 과테말라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과했으며, 로버트 깁스 백악관 대변인도 1일 정례 브리핑에서 “이는 비극적인 것으로 미국은 영향을 입은 모든 사람들에게 사과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과로 냉각된 양국간의 관계는 누그러진 것으로 보인다.

나치의 생체실험, 731부대를 주축으로 한 일본의 마루타 생체실험을 비롯해 이렇게 혐오스러운 사건들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인체 실험(Human Subject Research HSR) 또는 생체실험은 살아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생물학적 실험을 가하는 반인륜적인 행위를 말한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역사가 깊을 뿐만 아니라 복잡한 내용들이 많다.

요즘 외신이나 언론매체를 보면 암, 심장병 등 주용 질병들이 곧 극복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생명공학이 급진전하면서 사람들은 곧 질병이라는 굴레 속에서 벗어나 건강한 삶을 그야말로 천세(千歲) 만세(萬歲)를 누릴 날이 곧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치명적인 질병은 더욱 늘어가고 있다. 특히 암이 그렇다. 암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50년 이상 진행됐는데도, 물론 부분적으로 발전했지만 이렇다 할 묘책이 나오지 못했다. 어떤 학자는 “인류, 암과의 싸움에서 패배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과학자가 치료방법을 개발할 때 어떤 약물이나 유전자 조작 등의 기술이 과연 먹혀 들어가고 있는지 그 실험을 하기 위해 대상으로 처음 시험대에 올리는 것이 바로 실험 쥐다. 아주 작지만 포유류라서 인간의 신체조직과 비슷하고 번식력이 왕성해 시험대상으로 오랫동안 사용돼 왔다.

외신에서 접하는 획기적인 과학적 성과들이 거의 실험 쥐를 통한 연구들이다. 비슷한 생물학적 조직과 기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쥐에서 성공하면 사람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험 쥐에서 통과된 연구가 사람에게 곧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실험 쥐에서 개, 또는 말이나, 소로 이어져 부작용 여부를 확인하고 다시 인간과 아주 비슷한 원숭이를 대상으로 실험한다. 여기에서 약물이나 유전자 조작 등의 방법이 안전하다는 것이 확인되면 최종 단계가 사람이다. 이를 임상실험이라고 한다. 사람에게 증명되지 못한 의학적 방법을 사람을 대상으로 실시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경우를 볼 수 없지만 세계동물애호가 단체들이 해마다 시험용으로 죽은 동물들의 수를 들고 이러한 연구단체들과 싸움을 벌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또 그 수를 갖고 애호단체와 연구단체 간에 실랑이가 벌어진다. 뿐만이 아니다. 동물실험단체에 테러를 가하는 경우까지 일어난다.

대니얼 안드레스 샌 디에고는 테러리스트’란 딱지를 단 채 미연방수사국(FBI)의 1급 지명수배자로 등록돼 있다. 역시 1급 지명수배자인 알카에다의 오사마 빈 라덴이나 알자와히리와 동급이다. 그러나 샌 디에고가 알카에다처럼 불특정 다수의 미국인을 위협하는 테러리스트는 아니다. 그는 큰 제약회사의 하청을 받아 동물실험을 하는 회사인 ‘헌팅던 생명과학’에 폭탄을 터뜨린 사건에 연루돼 쫓기고 있다.

2010년 통계에 따르면 2009년까지 미국에서만 동물보호 운동가들이 일으킨 범죄는 건수로 1800여 건, 재산피해로 1300억 원을 넘는다. 동물실험을 하는 과학자들에 대한 위협도 중단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실험용 동물들의 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어 이러한 범죄도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임상이 생체실험(HSR)과 다른 것이 있다면 당사자 본인 허락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이고 보건당국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보건당국도 부작용으로 인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는 위험 때문에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한 과학자가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만들어낸 약물이 의사의 통과되기 까지는 이러한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만 한다.

사실 항생제를 비롯해 백신 등 우리를 질병에서 벗어나게 만든 이러한 약물이 오늘날 있기 까지는 과테말라 생체실험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어떠한 차원에서 이루어졌던 간에 생체실험이 있었다. 대상은 주로 가난하고 무지한 흑인들이었으며, 미국의 경우는 히스파닉 계통의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경우도 많다.

현실적으로 이야기해 보자. 이렇게 많은 걸림돌을 극복하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전쟁이다. 전쟁에서 얻은 포로, 또는 점령지의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실시하는 것이다. 전쟁에 포로는 인간이라기보다 전리품이다. 그들의 생사여탈권은 승자에게 있다. 또 전쟁 중에는 법이 통하지 않는 무법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731부대의 생체해부 의 한 광경. 일본은 비단 중국뿐만 아니라 점령지인 싱가포르와 필리핀에도 생체실험부대를 세워 마루타 생체실험을 실시했다.

2차 대전 중 일본, 독일이 생체실험을 자행한 것도 그런 이유다. 이처럼 좋은 기회를 이용해 바로 사람이라는 실험대상을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험 쥐도 필요 없다. 개, 원숭이도 필요 없다. 복잡한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이 바로 임상실험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잔혹한 인체실험의 역사를 뒤집어보자. 전쟁 중에 자행된 인체실험과 인체해부(vivisection)의 연구결과는 훗날 교묘하게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자비의 인술(仁術)로 둔갑한다. 일본으로 항복을 얻어낸 맥아더 사령관이 일본의 731부대에 전쟁범죄 혐의를 적용하지 않은 것은 그들의 생체실험 연구결과를 고스란히 넘겨받는다는 전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비단 마루타생체실험을 진행한 이시이의 731부대뿐만이 아니다. 일본은 점령지인 중국 만주 일대에 5개가 넘는 생체실험부대를 설립했으며 싱가포르, 필리핀 등 점령국 곳에 이러한 부대를 설립해 생체실험을 주도했다.

2차 대전 후 미국이 의학과 약학, 그리고 생물학, 화학에 눈부신 성장을 한 이면에는 이러한 잔인한 역사가 자리잡고 있다. 일본도 마찬 가지다. 일본도 이 분야에서 서구 유럽을 능가할 정도로 발전했다.

어쨌든 이런 역사 속에서 멩겔레는 죽음의 천사, 악의 화신의 오명을 남기게 됐다. 전형적인 프랑켄슈타인의 본보기다. 그가 아우슈비츠에서 의무관으로 근무한 것은 불과 1년 반 정도다. 비록 최고의 권력기관인 나치 친위대라 하지만 그의 계급은 불과 대위였다. 멩겔레가 나치의 최대 악질로 1급 전범으로 분류된 것이 어쩌면 유대주의의 편파성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많다.

김형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