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복지는 결국 돈 문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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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어제 “재원 마련보다 철학이 중요하다”며 “복지는 철학이며 의지”라고 했다. 그는 17일에도 “중요한 건 시대정신이요, 철학이며 의지”라고 말한 바 있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도 엊그제 비슷한 얘기를 했다. “왜 모든 것을 돈으로만 보고 생각하는지 안타깝다”며 “중요한 건 사회적 관심과 봉사 의식”이라고 언급했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복지는 분명히 철학이다.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의 논쟁은 나라의 복지정책을 어느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이냐라는 국가경영철학에 관한 논쟁이다. 복지국가로 갈 것인가, 시장중심국가로 갈 것인가 하는, 나라의 방향에 대한 선택 문제다. 박 전 대표의 관심론도 맞는 말이다. 관심과 봉사가 충분하면 똑같은 돈을 쓰더라도 복지를 더 많이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들이 표를 의식해 국민이 듣기 좋은 얘기만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정작 중요한 본질적인 재원 문제는 우회하고 있다는 의구심이다.

 지금 진행 중인 논쟁의 핵심은 ‘세금이냐 복지냐’다. 겉으론 보편적-선별적 복지 논쟁으로 포장돼 있지만 실은 ‘고(高)세금-고(高)복지’와 ‘저(低)세금-저(低)복지’의 논쟁이다. 복지지출을 줄이자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면, 결국 복지를 확 늘릴 것이냐, 조금씩 늘릴 것이냐다. 무상복지를 하려면 세금을 대폭 늘리는 방법밖에 없다는 건 진보진영도 동의하고 있는 바다. 심지어 민주당 내에서조차 “재원 대책이 없는 복지정책은 거짓”이라는 반박이 나오는 실정이다.

 진보진영이 무상복지의 전범(典範)으로 삼고 있는 이른바 노르딕(북유럽식) 모델에선 세금 등 국민부담률이 소득의 50%나 된다. 부담률이 26.5%인 우리가 따라가려면 최소한 지금 내는 세금만큼 더 내야 한다. 무상복지를 하려면 연간 최소 100조원 이상이 추가로 필요하고, 이 때문에 소득세를 두 배 이상 더 거둬야 한다는 진보진영 주장도 있다. 세금 덜 내고 무상복지하는 다른 방법이 있긴 하다. 국가채무를 확 늘리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 세대가 잘살자고 다음 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는 꼴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무상복지를 얘기하면서 “재정구조 개혁과 부자 감세 포기 등으로 충분히 재원 마련이 가능하다”는 손 대표의 말은 현실성이 없다. 박 전 대표의 ‘관심 우선론’도 그렇다. 재원 마련 대책 없이 관심과 봉사만으로는 복지 정책을 추진하기 어렵다.

 그동안 우리는 줄곧 경제적 능력에 걸맞은 복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래야 지속가능한 복지가 되고, 성장 잠재력을 해치지 않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주창하는 ‘70% 복지론’에도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온 건 이 때문이었다. 일본 민주당이 수많은 복지 공약을 내놨다 결국 재정 문제가 한계에 부딪치자 모두 포기한 것이 좋은 사례다. 나라를 대표하는 정치인이라면 그러한 부분도 국민에게 설명하며 설득해야 한다. 복지를 더하자면서, 보편적 복지를 철학으로 삼겠다면서 증세(增稅)를 언급하지 않는 건 국민에게 잘못된 환상만 심어줄 수 있다. 재원대책까지 함께 내놓고 국민의 평가를 받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