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앞을 내다본 덩샤오핑의 혜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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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꾼 덩샤오핑(鄧小平·등소평)은 1979년 1월, 일흔 다섯에야 미국을 처음 방문했다. 당 중앙군사위 주석, 국빈 자격으로서다. 덩은 카우보이 모자를 비스듬히 쓰고 로데오 경기를 관람했다. 카메라 앞에서도 파안대소하는 모습을 몇 차례나 과시했다. 중국 대륙을 바꿀 개혁·개방 의지를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오뚝이처럼 재기를 거듭한 거물 정객의 면모가 풍겼다. 전 세계는 ‘죽의 장막’을 쳐놓고 서방과 맞섰던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 시대가 끝났음을 실감했다. 키 1m50㎝ 조금 넘는 덩샤오핑 곁에서 지미 카터 대통령이 왜소하게 보였다. 미국 기업과 자본의 중국 진출 물꼬가 터졌다.

중국 최고지도자들의 미국 국빈 방문에는 늘 여러 개의 코드가 숨어 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팔색조 같은 변신을 거듭해왔다. 겉으로는 미·중 역학관계, 속으로는 중국 정치의 내밀함을 풍긴다.

장쩌민(江澤民·강택민) 국가주석의 국빈 방문(97년 10월) 때 파트너는 빌 클린턴 대통령이었다. 두 정상은 ‘적이 아닌 동반자’의 길을 다짐했다. 장 주석은 클린턴 대통령의 환영사에 답하면서 중국어가 아닌 영어로 “미·중과 모든 나라들이 평화와 안전, 번영을 위해 손잡고 나가자”고 강조했다. 민주화 시위를 유혈 진압한 천안문 사태의 여파를 의식했는지 장 주석은 서구식 매너로 ‘부드럽고 세련된 중국’을 강조하려 애썼다.

하지만 후진타오(胡錦濤·호금도) 국가주석의 방미는 달랐다. 후 주석은 ‘큰손’의 배포를 유감없이 과시했다. 보잉 항공기 200대를 구매하기로 했다. 21일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에 가선 “중국 기업들이 미 경제에 새로운 동력을 제공하고 일자리도 만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중 정상회담 때마다 중국 측의 심기를 건드려왔던 인권과 대만·티베트 문제는 어느새 사그라졌다. 위안화 절상 공방도 빅딜이 이뤄졌는지 중국 측은 미국산 구매를 늘리겠다는 립서비스를 던지고 있다.

후 주석의 방미는 중국 정계에서도 의미가 작지 않다. 덩샤오핑이 설계해놓은 시대가 끝났기 때문이다. 덩은 92년 장쩌민을 상하이에서 끌어올려 최고권력자로 키웠다. 티베트 시짱(西藏)자치구에서 일하던 49세의 후진타오를 차차기 후계자로 점지했다. 덩샤오핑의 혜안은 20년 앞을 정확히 내다봤다. 지도자를 고르는 힘이 나라 운명을 바꾼다는 말이 실감난다.

후 주석의 방미 말미에 미·중 양국은 올해 안에 조셉 바이든 부통령과 시진핑(習近平·습근평) 국가부주석을 서로 초청하기로 했다. 내년에 시진핑 체제가 등장하기 전에 미국이 레드 카펫을 깔아주겠다는 메시지다. 서구식 민주주의·인권을 강조해온 미국이 이제 중국식 민주주의 논리에 동조하는 모양새다.

중국은 강해진 국력을 바탕으로 더 이상 민주화란 화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공산주의 국가의 최대 약점인 권력승계 방식을 중국식으로 극복했기 때문이다. 옛 소련과 동구권이 경제파탄과 독재, 권력암투로 무너진 데 비해 엄청난 체제 진화다. 중국 대륙의 전문가들은 민주화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절대로 서구 방식은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답한다. 오히려 ‘중국식 민주체제’의 강점을 강조한다. “중국식 시장경제처럼 중국식 정치 발전도 성공할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런 주장이 아시아·남미·아프리카의 개도국에서 먹히지 말란 법은 없다.

반면 노벨 평화상을 받은 인권 변호사 류샤오보(劉曉波·유효파·56)는 “중국은 포스트 전체주의”(지식갤러리, 류샤오보 중국을 말하다)라고 주장한다. 또 ‘21세기는 중국의 세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어용 엘리트와 신좌파로 몰아세운다. 그는 다른 반체제 인사들처럼 국가전복 선동혐의로 기소돼 2009년 12월 11년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갇혀 있다. 중국의 반체제 인사들은 침묵하는 지식인과 젊은이들을 보면서 절망한다.

후 주석의 최대 방미 성과는 미·중 간의 민주 논쟁을 끝낸 것이다. 중국의 국력과 미국의 실리 앞에서 오바마의 ‘변화’ 구호는 빛을 잃었다. 혹여 오바마가 후 주석을 국빈으로 접대할 때 마음속으론 ‘흑묘백묘론’을 되뇌지 않았을까. ‘중국 돈이든 미국 돈이든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만 만들면 된다’고. 중국은 공자(孔子)를 앞세운 중국식 소프트파워로 지구촌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경제대국과 군사강국의 자신감을 깔고서다. 덩샤오핑이 방미한 지 32년 만의 일이다. 탁월한 지도자 한 명이 내뿜는 변화의 에너지가 얼마나 큰지를 새삼 절감한다.

이양수(yas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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