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수능 언어영역 출제 방향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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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원은 2011학년도 수능시험에서 EBS교재의 70% 반영이라는 공언을 달성해 보였다. 그러나 문제 난이도가 높아 사교육을 억제하는 데엔 실패한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을 받았다. 수능 출제를 담당하는 평가원의 고민을 살펴보면 수능시험을 준비하는데 있어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그 고민은 이렇다.

첫째, 평가원은 EBS 교재의 70% 반영이라는 (정치적인) 목표와 시험성적을 9등급으로 구분해야 하는 평가목표를 조화시켜야 한다. 둘째,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EBS 교재만 열심히 공부하면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있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 셋째, 출판사나 강사들이 만든 여러 문제집에서 유사하게 출제되는 문제들과 관련해 시비가 일어나지 않도록 출제해야 한다.

EBS교재에서 70%를 출제하면서, 문제는 어렵지 않아 사교육을 줄일 수 있고, 동시에 기출문제 시비에서 자유로워야 하는 이 세 가지 고민을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는 출제방법이 있을까? 답은 ‘없다’이다. 이유를 분석해보자.

EBS 교재에 수록된 문학작품이나 지문을 사용하면서도 문제를 쉽게 출제한다면 등급구분에 실패할 위험이 커질 수 있다. 만일 등급을 구분하는데 실패할 경우 재수생이 급증하고 대학은 논술고사의 반영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에 따라 사교육을 줄이고자 시도했던 EBS 교재 출제가 오히려 사교육을 부추기는 역효과를 나타낼 것이다. 앞으로 EBS교재에 대한 각 출판사와 강사들의 분석은 더욱 치밀해질 것이다. 이 경우 출제 난이도를 낮추게 되면 평가원은 기출문제 시비에서 자유롭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평가원은 올해도 EBS교재에서 6월 모의고사에는 50%, 9월 모의고사엔 60%, 수능시험엔 70%를 반영해야 한다. 6월과 9월 모의평가를 보고 나면 수능에서 출제할 수 있는 작품이나 지문에 대한 선택의 폭은 급격히 제한된다. 이렇게 제한된 작품과 지문을 이용하면서 평가원 문제의 품격을 유지하려면 낯선 작품이나 낯선 지문을 출제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기출문제 시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문제와, 고난도 추론 문제를 개발해야 하는 입장이 된다. 결국, 문제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2011학년도 수능 문제가 어렵게 출제돼, EBS교재만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거라던 평가원의 약속이 거짓처럼 들렸다는 수험생들의 푸념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올해 수능은 쉽게 출제될까.

EBS교재에서 70%를 출제하면서, 문제는 어렵지 않아 사교육을 줄일 수 있고, 기출문제 시비에서 자유로워야 하는 이 세 가지 고민을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는 출제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이렇게 서로 맞물려 있는 모순된 요구를 누구도 만족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평가원의 잘못이 아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출제했고 성공적인 2011 수능 출제 결과를 만들었다.

2012학년 수능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보다 쉽게 출제하겠다는 평가원의 약속을 믿는 것은 논리가 맞지 않는 소망이다. 버려라. 지난해에도 이 지면에서 EBS로 인해 수능 출제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여러분께 말한 바 있다. 올해도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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