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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기 안 보는 홍익대 미대 입시현장 가 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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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20일 홍익대 미술대 입시가 치러진 인문사회관 강의실. 시험장 어디를 봐도 석고 조각이나 사과 같은 정물은 찾아볼 수 없다. 수험생들도 다른 대학 미대 입시장과 달리 붓을 들고 있지 않았다.

 김식 미술대학원 동양화과 부교수는 수험생 3명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는 “동굴의 상대어를 말해보세요”라고 물었다. 한 학생은 “하늘”이라고 답했다. 옆에 있는 학생은 “들판”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를 포함한 교수 3명은 이런 답변을 토대로 “왜 그렇게 생각했느냐”고 물었다. 면접식으로 진행된 이날 시험은 학생의 언어 능력, 표현력 등을 측정하기 위한 것이다. 무실기 전형 면접에서는 자전거 안장을 이용한 피카소의 작품 ‘황소 머리’를 사진으로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같은 소재를 쓴다면 어떤 작품을 만들겠는가”라는 질문이 나왔다.

지난해 10월 서울 홍익대 홍문관 강의실에서 진행된 모의 면접 장면. [홍익대 제공]

 홍익대는 2년 전인 2009학년도부터 전체 모집인원의 일부에 한해 정물화 테스트 등 실기 시험을 없앴다. 이번 대입에서 무실기 전형으로 뽑은 인원은 서울캠퍼스 전체 모집인원(500명)의 38%였다. 정시 전형에서는 수학능력시험 성적으로 3배수를 선발한 뒤 내신(30%), 수능(50%), 미술활동보고서(10%), 면접(10%) 등을 보고 뽑는다.

 수험생들은 이런 면접에 다소 당황스러워했다. 이주원(진주여고3)양은 “지원 동기나 장래희망을 묻기보다 인간 본성을 묻는 철학적인 질문이 나왔다”고 말했다. 대학 측은 학생의 표현력이나 작품 구상 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미대 교수뿐 아니라 국어교육학 교수까지 참여시켜 문제를 출제했다.

 이처럼 홍익대가 미대 입시를 바꾼 것은 학원에서 집중적인 훈련을 받은 창의성 떨어지는 학생을 뽑지 않기 위해서다. 김영원 홍익대 미대 학장은 “앤디 워홀과 같은 예술가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틀에 박힌 손재주보다는 지각과 소통 능력을 갖춘 인재를 뽑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9학년도부터 무실기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이 실기 시험으로 들어온 학생보다 전공 학점 등 성적이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대학 측은 무실기 전형을 더 확대해 2013학년도 입시에서는 실기 시험을 없앨 계획이다. 홍익대 미대의 무실기 전형은 다른 대학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김 학장은 “미대 학장들이 3월 첫 협의회를 열고 구체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학부모들도 실기 시험 폐지에 긍정적이다. 광주광역시에서 올라온 학부모 김미숙(44)씨는 “미대에 보내려면 자녀를 서울에 있는 학원에 보내야 했지만 이제는 지방에만 있던 학생도 합격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고 말했다.

김민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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