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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2만원 ‘보조’서 이젠 가맹점 192개 ‘벤처 사장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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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서울대에도 미용학과가 생겨야 합니다.”
12일 오전 서울 강남구 신사동 사무실에서 만난 박승철 헤어스투디오의 박승철(54) 대표가 한 말이다. 그는 미용이 우리 삶에 중요한 부분이 됐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박 대표는 “이제는 미용실이 단순히 머리만 만지는 곳이 아닙니다. 과거엔 미용산업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이젠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것과 같아요. 한 사람의 이미지를 창조하는 것이 이 시대 미용실의 역할입니다”라고 강조했다.

박승철 헤어스투디오(㈜TiTi)는 1981년 명동 1호점을 시작으로 시작해 현재 국내 192개, 중국·미국·영국 7곳의 매장에 300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국내 최대 프랜차이즈 미용실로 성장했다. 박 대표는 ‘원장님’ 개인의 역량과 실력에만 의존하던 미용실을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키웠다. 올해부터는 영남이공대학에 자신의 이름을 딴 ‘박승철 헤어과’를 개설해 미용전문가를 양성할 예정이다. 이 회사는 가맹점에서 받는 프랜차이즈 로열티와 20여 개 직영점 매출을 합쳐 지난해 120억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박 대표는 미용업계 최초로 2~3년 안에 코스닥에 등록할 계획을 갖고 있다.

서울이 고향인 박 대표는 고교 졸업 후 취직을 위해 여러 회사 면접을 봤다. 하지만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오른쪽 다리가 불편한 그를 반기는 회사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화여대 근처의 언덕길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온통 사람 머리만 보였다. 그 순간 “미용이 돈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용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미용기술을 배우기 위해 나섰지만 다리가 불편한 그를 받아주는 미용실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어렵사리 취직한 뒤에도 남들에 비해 숙련 속도가 느려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쫓겨나기 일쑤였다.

우여곡절 끝에 79년 명동의 남희미용실에 취직해 월급 2만원을 받는 ‘보조’ 생활을 시작했다. 미용실에 8시까지 출근하기 위해서는 매일 오전 5시 수원 집을 나서야 했다. 미용실 영업이 끝난 후에는 홀로 남아 가발로 커트와 파마 연습을 했다. 그는 “연습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그러다 통행금지에 걸려 파출소에서 잔 적도 많았죠. 세상의 편견을 깨려면 최고가 돼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라고 회상했다. 이때 디자이너로 일하던 지금의 부인(박승철 헤어스투디오 청담점 원장)을 만났다.

박 대표는 81년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긴 남희미용실을 인수해 ‘박승철 헤어스투디오’ 간판을 내걸었다. 자신의 이름을 건 미용실을 100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남과 같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판단에 매장 바닥에 대리석을 깔고 호텔과 같이 화려하게 인테리어를 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도였다. 그러나 생소한 간판과 인테리어에 고객들은 낯설어 했고 예전 고객들은 자리를 옮겨간 남희미용실로 몰려갔다. 주변에서는 ‘미용실을 브랜드화하겠다’는 박 대표의 생각을 비웃었다. 그러나 2~3년이 지나면서 단골 손님이 하나 둘 생겨났고 83년 인천 신포동에 2호 매장을 열었다. 2002년에는 100호점(부천 상동점)을 돌파했다.

박 대표가 현장에서 일한 것은 6년 남짓이다. 다리가 불편해 오래 서 있기 힘들기 때문이다. 불편한 다리가 미용사에게 약점이었으나 그를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었다. 박 대표는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니 뭐가 중요한지 눈에 들어왔다”며 “미용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이고, 직원을 우선 만족시켜야 손님에게 좋은 서비스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박승철 헤어스투디오는 한국 미용업계 최초로 미용사들에게 ‘디자이너’ 명칭을 쓰도록 했다. 또 주5 일제를 실시하고 기술교육 프로그램을 25단계로 세분화해 진행한다. 인성교육을 전체 교육프로그램의 30%로 강화했다. 지금도 새로 가맹점을 낼 때 건물 평면도는 박 대표가 직접 챙긴다. 서서 일하는 직원들을 생각해 효율적인 동선을 만들기 위해서다.

박 대표는 자신의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지 않는다. 직원들에게 괜한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다른 미용실은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고 어떻게 머리를 하는지 살펴보기 위한 뜻도 담겨 있다. 얼마 전에는 사우나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았다.

인터뷰 동안 박 대표는 줄곧 직원 교육을 강조했다. “미용실은 서비스업이에요. 물건을 만들어 팔면 오히려 쉬울 거예요. 하지만 이건 고객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섬세한 장사예요. 이 때문에 직원 한 명 한 명의 마음가짐이 중요하죠”라고 말했다.

그의 다음 목표는 가발사업과 해외진출이다. “지금 한국 미용사 수준이면 외국에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어요. 특히 중국은 미용사들에게 기회의 땅이죠. 경쟁이 치열한 한국에서 힘 빼지 말고 밖에 나가서 한 번 부딪쳐 볼 겁니다.”

임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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