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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덴만 여명’ 피랍선원 전원 구출] 소말리아 해적 추격전 재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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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 15일 아라비아해에서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삼호주얼리호가 피랍 일주일째인 21일 오전(현지시간) 청해부대의 군사작전으로 구출됐다. 피랍 직후 2000㎞ 떨어진 현장으로 급파된 청해부대의 구축함 최영함은 6일 2시간16분간의 피 말리는 추격전과 두 차례의 구출 작전 끝에 선원 21명을 구출했다. 희생자 없는 ‘완벽작전’이었다. 아덴만 공해상에서 펼쳐진 우리 군 사상 최초의 해적 퇴치 작전, ‘아덴만 여명작전’을 합참 브리핑으로 재구성했다(이하 현지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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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말리아 해적의 납치 사례 중 최북단서 피랍=15일 오전 7시40분 북위 22도, 동경 64도 아라비아해는 몬순의 계절이 지난 뒤여서 고요했다. 화학물질을 싣고 스리랑카로 항해하던 1만1000t급 삼호주얼리호 앞에 해적선이 나타났다. 해적 모선(母船)에서 내려진 소형 모터 보트 두 척이 삼호주얼리호로 바짝 다가갔다. 삼호주얼리호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온 해적 13명에 의해 순식간에 장악됐다. 해적들은 AK소총과 생선칼로 선원들을 위협했다. 해적 모선은 그 자리를 떠났다.

 오후 7시30분. 지부티 항구에서 군수물자를 선적 중이던 청해부대 최영함(부대장 조영주 대령)이 현장으로 발진했다. 4500t급 구축함 최영함에는 링스(Lynks) 대잠 헬기 1대, 해군 특수전부대(UDT/SEAL) 30여 명 등 300명이 타고 있었다. 소말리아 해역의 연합해군사령부 산하 ‘CTF 151’의 정보 협조를 받아가며 추격전을 시작했다. 이틀 뒤인 17일 오후 11시. 해적들의 근거지인 소말리아 해역으로 항해하던 삼호주얼리호가 레이더에 잡혔다. 피랍 지점에서 남쪽으로 450~500㎞, 오만 샬랄라항에서 600㎞ 떨어진 지점이었다. 해적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거리를 유지하며 작전 기회를 기다렸다.

청해부대가 해적에게서 노획한 해적보트와 AK-47 소총. [국방부 제공]

 #몽골 화물선 등장, 1차 양면 작전=18일 오후 2시20분. 삼호주얼리호에서 11㎞ 떨어진 곳에서 몽골 화물선(6만t급)이 지나가자 해적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삼호주얼리호에서 해적 4명이 내려와 고속보트로 몽골 화물선에 접근했다. 합참 관계자는 “추가로 배를 납치하고, 해적 일부는 그 배로 육지로 돌아가려 했던 듯하다”고 말했다. 해적 세력이 분산되는 절호의 타이밍이었다. 최영함의 양면 작전이 시작됐다. 몽골 화물선의 해적들 위로 링스 헬기를 띄우면서 동시에 특수전 대원들이 고속단정을 타고 삼호주얼리호로 향했다. 링스헬기에서 기관총으로 위협 사격을 가했다. 해적들은 사살되거나 바다로 추락한 듯 보였다. 해적들이 삼호주얼리호로 돌진하는 우리 고속정에 대해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고속정에 타고 있던 특수전 대원 3명이 부상했다. 최영함이 해적들이 타고 있던 고속 보트를 인양했다. AK-47 소총 3자루, 어부들이 쓰는 칼 서너 자루, 탄창(30발 장전용), 사다리 3개를 확보했다. 해적 4명은 헤엄쳐 삼호주얼리호로 복귀한 것으로 드러났다.

 #“선원 돌려주면 고향집으로 보내준다” 회유=삼호해운 측과 삼호주얼리호 선장의 통신은 계속됐다. 1차 작전 뒤 선장은 “우리는 안전하다. 해적들이 당혹하고 겁먹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전했다. 최영함은 해적들을 상대로 투항 설득을 시작했다. “삼호주얼리호와 선원들을 돌려주면 집으로 돌아가도록 해주겠다.” “해적들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가족들과 부족을 위해 돈 벌러 나온 어부 출신들임을 감안해 투항 작업에 역점을 뒀다”고 말했다.

 18일 오후 10시23분. 삼호주얼리호에서 13㎞ 떨어진 곳에 90t급의 어선이 나타났다. 최영함 조영주 함장은 해적 증원 세력으로 추정했다. 경고 방송과 사격에도 삼호주얼리호 쪽으로 접근을 계속하다 정지했다. 선박 검색을 한 결과 해적선이 아닌 이란 어선으로 판명됐다. 최영함은 3.6㎞ 거리를 유지하며 소말리아 해역으로 방향을 튼 삼호주얼리호를 따라갔다. 오만 해군의 헬기가 도착해 부상병을 오만의 대학병원으로 후송했다. 해적들에 대한 투항 설득, 위협 사격은 계속됐다. 해적들을 지치도록 하기위한 전략이었다.

 #만월(滿月)의 은은한 빛 속에 전격 작전=21일 오전 4시58분. 삼호주얼리호는 소말리아 해적들의 근거지인 가라카드 항구로부터 1240㎞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592㎞ 뒤엔 해적 모선이 마중 나와 있었다. 해적들이 합류하면 작전은 불가능한 상황이 된다. 미 5함대 사령부의 구축함이 지원을 위해 도착해 있었다. 오만 경비함도 18일부터 동행 항해 중이었다. 물러설 수 없는 작전 시간이 됐다. 작전은 여명이 밝아오는 때 시작한다는 뜻으로 ‘아덴만 여명작전’으로 정해졌다. 한민구 합참의장의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하늘엔 보름달이 여전히 떠 있었다. 작전은 20일 오후 이명박 대통령과 김관진 국방부 장관, 합참의 승인을 받아놓은 상태였다. 링스 헬기가 떴고, 최영함의 함포 사격 속에 고속정 3대가 삼호주얼리호로 진입했다. 4시간58분 만에 작전은 끝났다. 우리 해군이 대양의 공해에서 해적을 무찌르고 우리 선원들과 재산을 구한 역사적 순간이었다.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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