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조봉암 무죄와 ‘사법 살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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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죽산(竹山) 조봉암(1898~1959) 선생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죽산이 누명을 뒤집어쓰고 사형당한 지 52년 만이다. 죽산은 한국 현대사에서 최초로 사회민주주의 이념을 실현하고자 했던 비운(悲運)의 정치인이다. 학문적으론 이미 재평가된 상태다. 사법 차원에서 뒤늦게나마 오류를 바로잡았다는 점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이를 통해 어두운 역사를 되돌아보게 된다.

 무엇보다 가장 뼈저리게 반성해야 할 곳은 사법부다. 죽산 사형은 대표적인 ‘사법 살인(Judicial Murder)’으로 기록되고 있다. 어제 대법원은 스스로 내린 사형선고가 잘못됐음을 인정했다. 사형의 이유가 됐던 국가변란(變亂)과 간첩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조봉암 선생은 독립운동가로서 건국에 참여했고 국회의원, 국회부의장, 농림부 장관으로 재직하며 우리 경제체제의 기반을 다진 정치인임에도 잘못된 판결로 사형이 집행됐다. 재심 판결로 그 잘못을 바로잡는다”며 반성의 뜻을 표했다.

 죽산은 1956년 대통령선거에서 이승만 후보에 맞서 진보당으로 출마해 200만 표를 넘는 지지율(23.8%)을 얻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2년 뒤 죽산은 북한 간첩들과 접선하고 북한의 통일론을 주장했다는 혐의로 구속 기소돼 1, 2심과 대법원을 거쳐 사형이 확정됐다. 59년 7월 30일 대법원에서 재심이 기각된 지 18시간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조작된 간첩사건의 진실은 그렇게 죽음으로 봉해졌고, 진보당도 와해됐다. 사법부는 정치공작의 냄새가 짙었던 사건에서 확실한 증거도 없이 법의 이름으로 소중한 생명을 빼앗아 갔다. 비록 독재정권 치하였다지만 판사들이 권력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던 치욕적인 오명(汚名)을 벗을 수 있겠는가.

 죽산은 좌우의 극단적 이념 대립이 빚어낸 냉전시대의 불운한 희생자였다. 해방 이후 조선공산당 창당 멤버로 항일운동을 한 그는 박헌영과 결별했다. 이후 이승만의 자유당에도, 보수 야당으로 분류되는 한국민주당(한민당)에도, 공산세력에도 참여하지 않은 채 서구적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진보당을 창당했다. 대법원도 이번에 진보당에 대해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거나 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배했다고 볼 수 없다”고 평가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민주주의·사회주의·평화통일을 지향한 진보 정치인으로서 죽산에 대한 명예회복과 함께 역사적 재조명이 이뤄져야 한다.

 오늘날의 사법부는 변하고 있다. 법원은 인혁당과 민청학련 사건의 재심에서 무죄를 잇따라 선고했고, 대법원은 긴급조치 1호에 대해 위헌을 선언했다. 이 같은 청산작업을 통해 과거를 속죄하는 건 필요하다. 하지만 ‘사법권력의 횡포’와 이념 갈등은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다. 부끄러운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현재를 살피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을 ‘조봉암 무죄’는 극명하게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