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미썸딩〈Tell me something〉

중앙일보

입력

당신의 기억을 얘기해 줘야 합니다
(극 중 조형사가 채수연에게 하는 대사)

13일 개봉하는 〈텔 미 썸딩〉의 조합은 최강이라 할 만합니다. 그가 가진 작품선택의 안목을 관객들에게 신뢰받고 있는 한석규라는 배우, 스크린 안에서만큼은 거부하기 어려운 매력을 가진 여배우 심은하, 거기에 매우 감성적인 드라마 연출에 재능을 보였던 장윤현 감독까지.

일단 이러한 감독과 배우의 조합에 "하드 고어 스릴러"라는 포장까지 덧붙여 〈텔 미 썸딩〉은 하반기 최대의 화제작임에 분명합니다. 관객들은 타이슨과 홀리필드의 대결만큼이나 이 잔치판에 대해서 분명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이를 입증하듯 올해 〈자귀모〉가 세운 개봉관 기록을 〈텔 미 썸딩〉은 뛰어 넘고 있지요(서울 34개관, 지방 114개관).

영화는 살인범의 엽기적인 범행으로 시작합니다. 사지절단과 토막살해를 통한 연속살인. 경찰은 이 사건을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조형사(한석규)에게 맡기지요. 그는 어머니 병원비를 자신이 쫓고 있던 용의자가 내주었다는 사실 때문에 경찰 내부에서 조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죽고, 상중(喪中)에 조형사는 사건을 수사합니다.

처음에 경찰은 피해자의 신원조차 파악하지 못하지만, 세 번째 희생자가 인공치아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 덕분에 관련 인물 하나를 발견합니다. 그가 바로 채수연(심은하)이지요. 경찰은 그를 통해 지금까지 살해된 피해자들이 모두 수연과 과거에 연인이었거나, 현재의 연인이었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그 와중에 수연은 범인으로 보이는 인물에게 습격을 받고, 경찰은 수연을 중심으로 수사망을 펼쳐 나갑니다.

먼저 〈텔 미 썸딩〉이 표방하고 있는 하드고어 스릴러라는 장르적 개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확실히 영화는 "하드고어"라는 이름에 걸맞게 많은 피가 나옵니다. 그리고 잔혹하고 엽기적이라는 표현이 가능할만한 묘사들이 영화 곳곳에 있지요.

하지만 많은 피와 엽기적인 묘사가 이 영화가 표방하는 장르적 범주에 있어서 전부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영화는 기이하게도 바람이 빠진 타이어처럼 뭔가 중요한 것을 빼먹고 있습니다.

흔히 수작의 범주에 들어가는 이런 류의 영화를 보면 가장 중요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은 등장인물 간의 심리관계지요. 거기에 주인공 자신이 가진 어떤 정신적 장애나 강박관념이 영화 속의 범죄와 관련을 맺고 있는 경우가 많고, 이것은 범죄 속에 인간을 성찰해 나가는 이런 장르 영화들이 가진 지적인 측면입니다. 이것은 치밀한 내러티브와도 불가분(不可分)의 관련이 있습니다만, 안타깝게도〈텔 미 썸딩〉은 여기서 약간 빗겨가 있습니다.

연속 살인 속에서 채수연이라는 공통 분모를 도출해내기까지의 도입부 진행 과정이 대표적입니다. 상당한 양의 피가 나오고 있지만, 영화는 그 피에 걸맞는 긴장감이나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지 못합니다. 즉 뭔가 있을 것 같은 분위기 같은 것과는 거리가 있지요.

게다가 영화 속에서 조형사가 처한, 즉 어머니를 여읜 상중이라는 상황과 그 병원비 때문에 내부 감사의 대상이 되었던 상황은 영화 전체의 내러티브와 특별한 연관성을 보여 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더 아쉽습니다. 이 대목은 영화에서 캐릭터를,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한 등장인물간의 관계를 더욱 흥미롭게 할 수도 있었던 배경 역할을 할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즉 이 부분은 영화 전체가 인물들간의 치밀한 긴장 관계에 기반을 두고 있다기보다는, 마지막의 반전과 잔혹함의 시각적 효과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조짐을 보이는 사례입니다.

〈텔 미 썸딩〉의 이런 점은 영화 전체적으로 덜그럭거린다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에피소드와 에피소드 사이는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고, 교차편집은 집중된 긴장감을 결여하고 있으며, 내러티브의 진행은 나사가 헐거워진 느낌을 주지요. 또한 영화의 반전은 관객들에게 크게 불만을 살 정도는 아니지만, 익숙하다는 느낌을 피해갈만큼 독특하거나 충격적이지도 않습니다.

어쨌든 장윤현 감독이 자신의 두 번째 작품에서 하드 고어라는 측면에서 강조를 해야한다는 사실과 스릴러 장르에서 가지는 복선과 반전에만 너무 잡착했다는 인상은 아무래도 떨치기 어렵습니다(이러한 점에 대해 관점에 따라서는 "선정주의"로 판단할 수도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텔 미 썸딩〉은 수작(秀作)이 아닌, 범작(凡作)에 머무르고 말았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