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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고객 고마움 몰랐다” … 현대차의 반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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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진
경제부문 기자

18일 부산 해운대 웨스틴 조선호텔. 신형 그랜저 시승회에 참석한 현대차 양승석 영업총괄 사장과 간부들의 표정에선 비장함이 느껴졌다. 심혈을 기울인 그랜저가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각오에서다. 하지만 이런 긴장감보다 새로운 변화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껏 현대차가 해외에서 선전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사준 고객들에게 반성하는 모습을 내비친 것이다.

 김성환 국내마케팅실장은 “현대차를 사랑하며 꾸준히 사준 고객들의 고마움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며 “현대차가 소비자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측면이 있고 이를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현대차를 서너 대씩 사준 고객들이 수입차만큼 만족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고객 만족 프로그램을 내놓겠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현대차 내수 판매(65만9565대)는 전년 대비 6% 줄었다. 경쟁업체들이 10% 이상 신장했고 수입차가 50% 증가한 것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이다. 2000년 이후 내수 점유율 50%를 넘나들었던 현대차에 고객들이 소리 없이 반대표를 던진 셈이다. 게다가 현대차 감소분의 대부분이 수입차로 갔다. 한 임원은 “현대차가 수입차에 발목 잡힐 줄 몰랐다. 앞으로 한·미,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면 중저가 수입차가 더 쏟아져 더욱 어려울 것”이라고 걱정했다.

 대표적인 게 수입차 베스트셀링카 1, 2위 벤츠 E300과 BMW 528이다. 이들과 경쟁한 현대 제네시스는 전년 대비 27%나 판매가 감소했다. 구형 그랜저도 도요타 캠리, 혼다 어코드, 닛산 알티마에 시장을 내줬다. 문제는 고급차 업체가 현대차와 가격 경쟁을 했다는 점이다. 현대차는 50% 점유율을 믿고 신차를 내놓을 때마다 10% 이상 가격을 올려 왔다. 결국 고급 수입차와 제네시스의 가격차는 수백만원까지 좁혀졌다. 여기에 소비자들은 차를 판 뒤 감사편지 한 장 보내지 않는 현대차 대신 수입차를 선택했다.

 지난해까지 현대차의 영업이익 중 내수 비중은 70%를 넘었다. 현대차는 내수에서 벌어 해외에 공장을 짓고 신차를 개발한 셈이다. 반성의 모습을 보인 현대차가 새로운 고객 만족 프로그램을 통해 수입차로 향한 고객의 발길을 되돌릴지 지켜볼 문제다.

김태진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