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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일본선 “사양산업이다” 손든 백화점…한국선 “초고속 성장산업”된 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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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지난해 12월 롯데백화점 소공동 본점은 애비뉴엘 명품관에서 VIP 고객들을 초대해 미술품 경매행사를 했다(사진 위). 현대백화점 신촌 유플렉스점은 지난해 10월 외국인 교환학생들을 위한 특별 쿠폰행사를 열었다(아래).


국내 백화점들의 선전이 눈부시다. 롯데·현대·신세계 등 이른바 ‘빅3’의 지난해 매출 신장률은 모두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업계 1위인 롯데백화점은 지난 7일 매출 715억원을 올리며 일일 매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지난해 매출 1조900억원을 기록해 1999년 롯데백화점 본점에 이어 두 번째로 ‘1조 백화점’에 진입했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선 사양산업으로 분류되는 백화점업이 유독 한국에서 잘나가는 이유를 들여다봤다.

김진경 기자

1985년, 현대백화점은 서울 압구정 본점 개점을 몇 달 앞두고 일본 백화점협회 관계자들을 한국으로 초청했다. 상품 구성과 전시, 고객 서비스 등에 대해 조언을 얻기 위해서였다. 25년이 지난 지난해 8월, 일본 백화점협회 회원들이 다시 현대백화점 본점을 방문했다. 목적은 반대였다. 백화점 면적을 넓히지 않고도 매출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비결을 듣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외국과 비교할 때 국내 백화점들이 승승장구하는 건 이례적이다. 2009년 미국과 일본의 백화점 매출 신장률은 각각 -12.2%와 -10.8%였다. 반면 같은 해 국내 전체 백화점 매출은 전년보다 9.0% 상승했다. 지난해 매출 신장률은 이보다 더 높은 12.2%로 잠정 집계된다. 선진국에서 백화점이 고전하는 건 시장이 포화인 데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소비가 위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충분치 않다.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다. 게다가 한국은 대형마트와 온라인몰이 급속도로 성장하며 거센 도전을 하는 상황에서 이뤄낸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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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들은 국내 백화점의 선전은 ▶한국만의 철저한 고객관리 기법 ▶명품 시장의 급성장 ▶급증하는 외국인 관광객 등 3박자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본다. 숙명여대 서용구(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양산업은 있어도 사양 기업은 없다’는 말을 한국의 백화점이 증명하고 있다”며 “국내 백화점이 두 자릿수 성장을 하고 있는 건 70세 노인이 마라톤을 뛰는 격”이라고 말했다. 그는 “외국인 관광객, 명품 대중화 등 상황적 요인도 있지만 까다로운 고객관리 같은 한국 백화점만의 강점이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백화점 고객 김지연(48·여)씨는 지난해 말 아들의 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백화점에서 합격을 기원하는 ‘금쌀엿’을 선물받았다. 김씨는 “내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을 챙겨줬을 때보다 아들의 합격 선물이 더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이 백화점은 고객이 기쁘게 받아들일 만한 개인화된 이벤트에 공을 들인다. 이를 위해 고객이 연령대별로 클럽에 가입하도록 유도한다. 출산을 앞둔 고객은 ‘프리맘 클럽’, 중·고등학생 부모는 ‘J클럽’, 결혼을 준비하는 고객은 ‘클럽웨딩’에 가입하도록 하는 식이다. 현대백화점 하지성 과장은 “각 상황에 맞는 정보와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고정 고객으로 끌어들인다”고 말했다.

 롯데백화점 명품관 에비뉴엘 VVIP 고객인 최모(43·여)씨는 쇼핑하러 갈 때와 집에 돌아올 때 백화점이 제공하는 수입 자동차를 이용한다. VVIP 고객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타운카’ 서비스다. 운전자도 딸려 있다. 백화점 VIP 라운지에 들어서면 담당자가 환하게 웃으며 “○○○ 고객님”하며 이름을 부른다. VIP 고객의 얼굴과 이름을 다 기억하고 있어서 가능하다. 쇼핑을 할 땐 개인 비서 겸 스타일리스트 역할을 하는 ‘퍼스널 쇼퍼’가 따라다니며 쇼핑을 돕는다. 이 백화점 한보영 대리는 “고객 개개인의 특성과 취향을 다 파악하는 건 한국만의 특징”이라며 “미국은 삭스피프스애비뉴 같은 유명 백화점도 구매 금액에 따라 등급을 나눈 뒤 각 등급에 따라 기계적으로 혜택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급속히 커지는 명품시장도 백화점 활황을 받치고 있다. 백화점 명품 매출은 최근 5년 사이 세 배로 커졌다. 신세계백화점은 전체 매출에서 명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7년 14.4%에서 지난해 24%로 늘었다. 이 백화점은 2007년 본점 본관을 명품관으로 재개장하고, 2009년에는 강남점 2층 매장 전체를 명품층으로 확장했다. 신세계 유통산업연구소 김민 팀장은 “직장인과 대학생까지 명품 가방을 필수품으로 인식하면서 명품 시장이 팽창했다”고 말했다.

 외국인의 힘도 크다. 엔화 환율이 치솟자 일본인들이 2009년 초부터 명품 관광을 위해 한국 백화점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구찌·보테가베네타·롤렉스 등 일본인이 좋아하는 명품 브랜드는 이 시기 매출 신장률이 전 년보다 두세 배 이상 뛰었다. 명품뿐 아니라 김치·김·유자차 등 일본인이 선호하는 식품이 백화점에서 품절되는 소동도 났다. 2009년 말부터는 중국인 쇼핑객이 크게 늘었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은 요즘 중국인 고객만 매일 200명 이상이다. 객단가(1인당 구매금액)도 일본인보다 평균 4배 이상 높다. 백화점들도 외국인을 위한 특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일본어·중국어 통역사를 배치하는 건 기본이다. 현지 마케팅도 활발하다.

롯데백화점은 중국 3대 포털사이트로 회원수가 7억여 명인 ‘왕이(163.com)’에 백화점 고정 페이지를 운영한다. 중국 고객의 백화점 방문기, 쇼핑·여행 정보, 우대 쿠폰 등을 담았다. 일본 최대 온라인 여행사인 ‘라쿠텐’ 홈페이지에도 백화점이 소개돼 있다.

김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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