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커버스토리] 전경련 회장뽑기, 官입김에 표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오너는 곤란하지 않느냐" 는 정부의 한 마디가 확정 단계이던 전국경제인연합회 차기회장 후보 선임작업을 사실상 원점으로 되돌려놓았다.

중도 퇴진한 김우중(金宇中)회장의 후임으로 '회장단 중에서 한 명' 을 선출한다는 전경련 방침에 대해 정부가 "오너는 곤란하다" 는 입장을 보이면서 상황이 1백80도 달라진 것.

지난달초 金회장이 사퇴의사를 밝힌 뒤 회장단은 차기회장으로 현대 정몽구(鄭夢九)회장을 추천하고, 鄭회장도 '회원들이 원한다면' 이라는 전제 아래 수락의사를 밝힐 때까지만 해도 가닥이 순조롭게 잡히는 것처럼 보였었다.

그러나 이런 구도에 정부가 제동을 걸고 나온 데다 차선책에 대한 전경련내 의견도 엇갈려 차기회장 문제는 복잡하게 얽혀들고 있다.

전경련은 일단 2일 저녁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회장단이 모여 차기회장 선임을 내년 2월 정기총회로 미루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김우중 회장이 사의를 밝혔으나 아직 총회에서 인준을 받지 않은 만큼 회장 타이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전경련 실무는 손병두(孫炳斗)상근부회장이 챙기도록 하자는 것.

이날 회의에선 이와 함께 회장단 중 최고 원로인 김각중(金珏中)경방회장을 회장대행으로 선임하는 방안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어느 경우든 정몽구 회장 선임건은 백지화될 공산이 커졌고, 이에 따라 4일로 예정됐던 임시총회도 자연스레 취소될 전망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당초 예정대로 정몽구 회장을 밀어붙이는 게 어떠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으나 실현 가능성은 희박한 분위기다. 전경련 방침이 이렇게 급선회한 것은 고위 경제관료가 강력한 입장을 전경련에 밝힌데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이른바 '5대그룹 오너 불가론' 이다.

내용인 즉 ▶5대 그룹은 연말까지 부채비율 2백%를 맞춰야 하는 등 구조조정 과정인 데다 ▶오너가 맡을 경우 전경련이 재벌 이익만 대변하는 단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전윤철(田允喆)공정위 위원장이 최근 공식석상에서 "반개혁적 태도를 보여온 전경련의 조직을 바꿔야 한다" 는 의견을 밝힌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심지어 정부 일각에서는 차기회장 후보로 몇몇 비오너 경제계 인사 등의 이름까지 거명했으나 전경련은 '재계 친목모임인 만큼 회장단이나 원로.고문단에서 맡아야 한다' 고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孫부회장은 지난달 말부터 전경련 회장.고문단과 연쇄 접촉하면서 대안을 모색해 왔다. 이 과정에서 제시된 절충안이 ▶원로 재계인사가 맡는 방안 ▶당분간 신임회장 선출을 연기하고 현 체제를 유지하는 방안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전경련 안팎의 반발도 적지 않은 상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산하기관도 아닌 민간경제단체장의 선임 문제까지 노골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이라며 "전경련 회장 선임에 외부 입김이 작용하는 것 자체가 큰 후유증을 남기는 것" 이라고 우려했다.

민병관.김동섭.표재용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