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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의 시시각각

한나라당, ‘7년 전 윤성식’ 기억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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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정동기 파문’은 이명박 대통령 정권과 한국 사회의 중요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청와대는 감사원의 독립적인 성격과 고위직의 도덕적 중요성을 간과했다. 후보자가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대통령 측근이란 점은 독립성을 위협한다. 전관예우로 커다란 부(富)를 축적한 것은 감사원장이 지녀야 할 도덕적 권위에 맞지 않다. 이런 사람을 임명함으로써 청와대는 “정권 스스로가 공정을 허물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청와대 참모진은 국정의 컨트롤 타워(control tower)이자 필터(filter)가 되어야 한다. 국정이란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참모진은 그 기능에 허점이 많다. 연평도 사태 때는 안보 대처 능력에 심각한 구멍을 보여주었다. 이번 인사작업에선 핵심을 놓쳤다. 참모진은 200 문항의 후보 검증서를 받고 모의청문회를 여는 등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독립성이나 도덕성은 모래처럼 새버렸다.

 정동기 후보자는 감사원장이 되기에는 공직관이 투철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07년 대선 때 그는 대검차장이었다. 당시 검찰은 이명박 후보의 BBK 사건을 수사한 후 이 후보에게 혐의가 없다고 밝혔다. 그런데 대검차장이 이 후보가 당선된 직후 대통령직 인수위에 참여했다. 대검차장이 그렇게 처신하니 “과연 BBK 수사는 공정했나”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대통령 측근이며 전관예우 논란의 한복판에 있다면 감사원장 자리의 엄중함을 고려해 사양했어야 했다.

 공정한 사회라는 정권의 가치(價値) 목표, 감사원의 독립성, 전관예우라는 비도의성(非道義性), 국민의 정서, 언론의 질타, 입법부의 반대 기류…이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정동기 임명은 명백히 잘못된 인사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강행하고 있다. 이것은 스스로 소통을 내던지는 위험한 자세다. 행정부 권력이 잘못된 궤도를 질주하면 입법부가 견제해야 한다.

 표결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이들은 한나라당이다. 지도부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며 밀어붙일 태세다. 이는 자신들의 과거를 까맣게 잊어버리는 ‘까마귀 정치’다. 노무현 대통령 정권이 출범한 지 7개월이 지난 2003년 9월, 의회권력을 쥐고 있던 제1 야당 한나라당은 윤성식 감사원장 후보자(고려대 교수)의 임명동의를 부결시켰다.

 윤 후보자에게는 개인적인 하자(瑕疵)는 별로 없었다. 오히려 그는 정동기 후보보다 훨씬 더 감사원에 대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미국 버클리대에서 ‘감사의 효과’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1996년부터 감사원 자문위원을 맡았으며 노무현 정부 때는 정부혁신·지방분권위에서 감사원 개혁팀을 이끌었다. 그는 미국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경영학 박사여서 회계감사 기능을 선진화하는 문제도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한나라당이 던진 칼은 ‘독립성’이었다. 윤 교수는 대선 때 노무현 후보의 자문교수였으며 노 후보의 당선 후에는 대통령직 인수위에 참여했던 것이다. 윤 후보자를 낙마시킨 후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는 반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대통령은 ‘형님, 아우’ 하는 사이인 사람을 추천했는데 우리 당의 다수 의원은 그로 인해 감사원이 독립적으로 기능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정동기 사건은 여당 의원들이 정권의 하수인 비난에서 3권 분립의 헌법기관으로 바로 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일부 인사는 동의안이 부결되면 레임덕(lame duck-집권말기 권력누수 현상)이 올 것이라고 걱정한다. 그러나 이는 짧은 걱정이다. 오히려 결격사유가 많은 후보자를 그대로 감사원장에 앉히는 것은 남은 임기 내내 피 흘리는 상처투성이 원숭이 한 마리를 어깨에 지고 가는 것이다. 대통령이나 집권당 그리고 국가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한나라당은 그 틀린 길을 갈 것인가.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