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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티펙과 흰 공 고집, 장갑도 샷 할때만 착용

중앙선데이

입력

TV 골프 채널엔 “색깔 볼이 대세”라는 광고가 나온다. 형광물질이 들어간 색깔 공은 러프에 들어가도 찾기가 쉬워 타수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정일미와 안시현이 지난해 8월 LPGA 대회에서 그랬던 것처럼 공이 바뀌어 실격되는 낭패를 볼 염려도 없다. 흰 공과 비교해 성능 차이도 거의 없다고 한다. 아마추어 골퍼들은 그래서 실용적인 색깔 볼을 많이 쓰고 있다.

그러나 유러피언 투어나 PGA 투어 등에서 뛰는 최고 선수들은 색깔 볼을 안 쓴다. 그들에게 골프 볼은 오직 흰색이다. 국내 프로 골프에는 색깔 볼을 쓰는 선수가 더러 있다. 그러나 자발적이 아니라 볼 회사와의 계약 때문에 바꾼 경우가 대부분이다.

KPGA 송병주 경기국장은 “프로 선수들 사이에서는 ‘색깔 볼은 여자, 혹은 아마추어나 치는 것’이란 인식이 있다”며 “색깔 공을 쓰는 선수가 동료로부터 무안당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고 말했다.

골프에는 일반인에겐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고수는 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송 국장은 “프로를 포함한 골프 고수들이 색깔 볼을 쓰지 않는 것은 일종의 과시욕”이라고 말했다. 조선시대 양반들처럼 실용성보다는 체면과 전통을 지킨다는 표시다. 이런 것들로 일반인들과 ‘신분이 다름’을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남자 선수는 자석 마크 안 써
남자 선수와 여자 선수의 기준도 다르다. 미국에서 활약하는 나상욱은 “여자 선수들은 흔히 하는 일이지만 PGA 투어 선수 사이에서는 터부인 것이 몇 가지 있다”고 말했다. 샷을 하기 전 캐디가 뒤에서 라인을 봐 주는 것을 여자 선수들은 해도 되는 일이라고 여기는데 남자 선수들에겐 창피한 일이다. 베테랑 프로인 강욱순은 “뒤에서 캐디가 얼쩡거리면 도움이 되기보다는 샷의 타이밍을 빼앗기고 그러다 보면 경기가 지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위중 선수는 “아주 안 될 때는 캐디에게 샷의 라인을 봐 달라고 한 적도 있지만 남자 선수들은 그냥 느낌대로 친다”고 했다. 선수의 기량이 높을수록 캐디의 도움을 받는 것을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여긴다.

모자에 붙이는 자석 마크에 대한 생각도 투어마다 기준이 다르다. 비교적 어린 KLPGA 투어 선수들은 변화를 잘 받아들이고 예쁜 마크를 모자에 다는 것을 패션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남자 선수들은 실용적이더라도 자석 마크를 쓰면 폼이 안 난다고 여긴다. 홍순상은 “요즘 나오는 바지는 딱 달라붙어 동전을 넣었다 뺐다 하는 게 쉽지 않지만 주머니에서 마크를 빼는 것이 습관이 됐고, 그래야 프로답다”고 말했다. 미국 LPGA 투어와 KLPGA투어에서 동시에 활약하는 이일희는 “미국 투어에서 자석 마크를 쓰는 선수는 거의 한국 선수들”이라고 말했다. 서양에선 여성 선수들도 자석 마크를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티를 꽂을 때도 학처럼 우아하게
프로들은 그린에서 볼을 마크할 때나 티잉그라운드에서 티를 꽂을 때 쭈그려 앉지 않는다. 한 발은 들고 다른 쪽 다리를 굽혀 학처럼 우아하게 허리를 숙여 재빨리 티를 꽂는다. 프로들은 연습장에서는 손이 아니라 발과 클럽 헤드로 티에 공을 올려놓는다. 그게 더 빨라서이기도 하지만 그래야 프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서울 원효로 장스 골프연습장의 레슨프로 장기성씨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프로들끼리 연습하면서 암묵적으로 ‘프로는 이렇게 하는 것’이란 공감대가 생긴다”고 말했다.

고수들과 하수들의 다른 행태 중에선 체면이 아니라 실용적인 이유에서 생긴 것도 있다. 프로는 나무 티펙만 쓴다. 강욱순 프로는 “플라스틱으로 된 티를 쓰면 임팩트 순간 저항이 다르게 느껴진다. 나무 티에서 느낄 수 있는 손맛이 나지 않고 샷에 대해 느끼는 신뢰감도 작다. 아마추어는 묵직한 소리가 나는 것을 좋아하는 듯한데 프로는 전혀 다르다. 나무 티가 헤드와 닿는 순간의 감을 아는 선수들이 다른 티를 쓰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자 선수들도 한결같이 나무 티를 쓰는데 임팩트 감보다는 스타일과 룰 때문이다. 박원 J골프 해설위원은 “선수들은 나무 티를 쓰면 정통파처럼 멋지고 심플하다고 여긴다”고 말했다. 프로들은 아마추어들이 즐겨 쓰는 끈 달린 티펙은 쓰지 않는다. 일부 주말 골퍼처럼 이 줄로 샷 비구선을 만들고 겨냥하면 룰 위반이 되기 때문이다. 오해를 살까 우려해 프로들은 줄이 달린 티는 절대 쓰지 않는다.
 
로고 안 가리려고 선글라스 뒤로 써
장갑을 끼는 습성을 봐도 고수인지 하수인지 가늠할 수 있다. 프로는 양손 장갑을 끼지 않는다. 오른손잡이의 경우 오른손은 맨손으로 스윙을 한다. 강욱순 프로는 “아마추어는 편하고 공을 멀리 보내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은 두꺼운 장갑을 좋아할 수도 있지만 실력이 좋아질수록 오른손의 감이 중요해지기 때문에 오른손엔 장갑을 끼지 않고 왼손 장갑도 최대한 얇은 것을 쓴다”고 말했다.

프로는 샷을 하고 나면 곧바로 장갑을 벗고 다음 샷을 할 때 장갑을 다시 착용한다. 박원 해설위원은 “장갑에 땀이 차지 않도록 평상시에 벗어 둬야 최적의 상태로 샷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마추어 골퍼들은 장갑을 벗으면 대충 바지에 구겨 넣지만 프로들은 정성껏 개서 뒷주머니에 집어넣는다. 장갑의 손가락이 주머니 바깥으로 나오게 하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요즘은 손등 쪽이 바깥으로 드러나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 그쪽에 장갑 회사의 로고가 있어 회사에서 선수들에게 그렇게 해 달라고 요청해서다. 요즘 프로 선수들은 선글라스를 끼지 않을 때는 모자 뒤쪽에 걸쳐 놓는다. 모자 챙 위에 올려놓는 게 쉽지만 스폰서 회사의 로고가 가려지기 때문에 뒤로 돌린다. 이게 유행이 돼 버렸다. 스폰서가 없는 선수, 로고가 가려져도 아무 상관없는 선수들도 선글라스는 뒤통수 쪽에 걸친다.

장갑을 끼고 퍼트하는 프로는 보기 어렵다. 역시 감이 중요해서다. 고수들은 평소 퍼터 커버를 꼭 씌워 놓는다. 헤드에 약간만 흠집이 생겨도 감이 떨어진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무슨 클럽 썼는지 물어보면 2벌타
아마추어들은 잘 모르는 룰 때문에 고수와 일반 골퍼들의 행동 양태가 다른 경우도 있다. 아마추어들은 캐디가 그린에서 공을 닦는 시간을 주려고 대신 마크를 하는 경우가 흔한데 이는 룰 위반이다. 프로를 포함한 고수들은 반드시 자신이 마크를 하고 자신이 공을 내려놓는다. 캐디들이 그린에서 주말 골퍼들에게 “이곳을 겨냥해 퍼트하세요”라면서 발이나 핀으로 타깃을 찍어 주는 일이 있다. 프로의 캐디들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역시 룰 위반이기 때문이다.

프로들은 동반자에게 무슨 클럽을 썼는지 물어보지 않는다. 상대의 클럽에 대해 질문하면 2벌타를 받기 때문이다. 어린 선수들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그린에서 상대의 퍼트 라인을 보고 참고하는 것은 에티켓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남자 메이저대회 TV 중계에는 상대방이 퍼트할 때 하늘의 구름을 보거나 손톱을 잡아뜯는 등 딴청을 부리는 것처럼 보이는 선수가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그들도 사람이다. 룰과 체면 때문에 드러내지 못할 뿐 상대가 무슨 클럽을 썼는지, 그린의 브레이크가 어떤지 매우 궁금해한다. 투어 대회는 큰돈이 걸렸기 때문에 아마추어보다 알고 싶은 욕망은 훨씬 더 강하다. 그래서 편법을 쓴다. 상대가 샷을 할 때 그의 캐디백 근처로 가서 어떤 클럽이 빠져 있는지 재빨리 흘겨보는 것이다. 7번 아이언이 보이지 않는다면 상대가 치는 클럽은 7번 아이언이다. 이를 막기 위해 샷을 할 때 캐디백 위에 수건을 덮어 놓는 선수도 있다. 투어 대회의 마지막 라운드에 선두 경쟁을 할 때는 수건을 덮어 놓은 캐디백이 종종 보인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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