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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내 생각은…

우리는 문화의 방관자로 남을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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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시영
실내 건축가·LIVING AXIS DESIGN 대표

유명한 도시들을 여행하다 보면 우리들 기억에 강하게 남는 무언가가 있다. 역사적인 광장이거나 상징적인 건축물, 미술관 등 그들 도시만이 갖는 특별한 이미지가 있다. 유럽 국가들은 도시를 활성화시키고 관광을 자원화하기 위해 전략적인 문화시설을 대규모로 조성한다. 19세기 스미스소니언재단 설립을 통해 오늘의 워싱턴이 정치 중심에서 예술의 중심으로 탈바꿈한 것이 그 사례다. 프랑스의 퐁피두(Pompidou) 대통령이 퐁피두센터를 시작으로 대형 프로젝트 10개를 실천에 옮겼으며, 데스텡(d’Estaing), 미테랑(Mitterrand) 대통령이 이를 이어받아 1989년 ‘그랑 루브르 미술관’을 개축함으로써 파리가 다시 세계 문화·패션의 중심도시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우린 기억하고 있다.

 서울의 모습은 어떤가. 강변도로, 올림픽도로, 아파트, 63빌딩, 국회의사당, 강남·강북을 잇는 수많은 다리…. 서울의 이미지를 정치·경제·군사적 관점의 도시에서 문화 중심으로 탈바꿈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다양한 지성과 대중 그리고 예술이 만나는, 미래를 향한 열린 문화 도시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관점에서 지난해 말 서울시의 역점사업 중 하나인 ‘한강 예술섬’ 예산이 전액 삭감되는 모습을 보면서 답답한 마음 금할 길 없다. 문화는 대중을 위한 투자요, 교육이라 하지 않는가. 지금 디자인과 문화에 대한 투자가 망설여지거나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면 우린 미래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문화의 방관자’로 기억될 것이다.

 정신없이 살아온 서울 시민들, 이젠 그들에게도 긴장과 이완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의 젊은이들을 공연의 질과 관계없이 계속해서 체조경기장으로 내모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도 외국의 유명한 콘서트홀처럼 멋진 공연장이 한강에 하나쯤 자리 잡을 만하지 않겠는가.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ohan Huizinga)는 『호모 루덴스』에서 인간을 ‘놀이하는 사람’으로 새롭게 규정했다. 강변의 놀이와 문화는 우리에게 일상에서 벗어난 매혹의 그물을 던진다. 감성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의 특성상, 또한 핵가족화에 이은 ‘나홀로족’의 증가로 공공 공간과 시설에 대한 이해도가 달라지고 있다. 공공 건물과 디자인은 단순한 옥외시설물이 아니라 복지 차원의 문화공간이며 개인 복지시설인 것이다. 이는 건축가나 디자이너도 최상의 감성과 디자인으로 사회와 아름답게 소통하며 대중을 이끌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21세기는 도시 문화와 감성의 시대다. 디자인과 문화로 세상을 바꾸려는 프로젝트는 그 자체가 국가적인 콘텐트이며 우리 미래를 위한 투자다. 정쟁의 차원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 문화는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만 공유할 수 있는 특성이 있다. 더 어려워질 경우를 대비한 투자가 필요한 것도 바로 이 시점이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한 차원 높은 다양한 문화와 디자인 네트워크를 통해 세상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최시영 실내 건축가·LIVING AXIS DESIGN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