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령한 느티나무 벤 뒤 13번의 낙반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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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금강휴게소 근처에 있는 경부고속도로 건설 순직자 위령탑.

공식집계 77명, 비공식적으론 수백 명.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희생된 이들이다. 건국 이래 최대 건설 사업이었던 만큼 희생자도 많았다. 특히 충북 청원군 옥산면에서 옥천군 청성면 묘금리까지 이어지는 대전공구 70㎞ 구간이 난공사였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에는 ㎞당 평균 1억원이 들었다. 대전공구는 평균 1억2000만원. 특히 대전에서 묘금리 구간은 1억7000만원이 들었다. 금강 2·3·4 교와 당재육교, 당재터널 등 난공사가 집중돼 있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뒤늦은 장마가 찾아왔다. 금강1교의 경우 가교만 네 차례 유실됐다. 이런 중에 대전육교 붕괴 사고가 터져 3명이 숨지고, 30여 명이 다쳤다. 대전공구 현장소장이 과로로 사망하는가 하면 직원 한 명은 임시가교에서 떨어져 숨지기도 했다.

 당재터널 공사는 그중에서도 악명 높았다. 옥천군 금강휴게소 동남쪽 28㎞ 지점에 있는 당재터널 공사 지역은 토사로 된 퇴적층이었다. 발파작업을 하면 토사가 쏟아져 내리기 일쑤였다. 처음 20m가량 파고들어갔을 때는 낙반사고로 3명이 숨지고 1명이 중상을 입었다. 인근 주민들이 ‘신령이 깃들었다’고 믿고 있던 느티나무를 벤 군 책임자가 사고를 당하자 많은 작업자가 공사를 내팽개치고 도망치기도 했다.

 모두 13번의 낙반사고가 있은 후 공사를 맡았던 현대건설은 이 구간에서 흑자를 포기했다. 단양 시멘트 공장에서 보통 시멘트보다 20배 빨리 굳는 시멘트를 만들어 200㎞ 떨어진 현장까지 날랐다. 500여 명이 밤낮없이 터널 공사에 매달렸다. 그 결과 3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됐던 공사를 25일 만에 마치고, 개통 10일 전인 1970년 6월 27일 당재터널을 완공했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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