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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 콜린스 (Phil Collins)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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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컬리스트나 기타리스트에 비해 드러머라는 위치는 화려한 조명을 받는 자리와는 거리가 멀다. 멜로디를 연주하는 위치도 아닌데다 체력 소모 또한 커서 팀의 리더로서 활동하는 드럼 연주자들을 발견하기란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필 콜린스 (Phil Collins)는 이러한 통념과는 거리가 먼 뮤지션이다. 제네시스 (Genesis)의 드러머 겸 보컬리스트, 작곡가, 프로듀서, 솔로 가수로서의 활동을 살펴보면 일반 뮤지션의 그것을 능가하기에 충분하다.

아역 배우로 연예계에 입문했던 (비틀즈의 영화 'A Hard Day's Night' 에 출연) 필은 10대 소년들의 작곡 모임으로 시작했던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제네시스의 드러머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피터 가브리엘 (Peter Gabriel) 이라는 강력한 카리스마의 보컬리스트가 팀 내에 존재하기 때문에 필 콜린스는 그다지 큰 주목을 끌진 못한 편이었다. (1973년 앨범 'Selling England By The Pound'에 수록된 'The More Fool Me'가 처음 리드 보컬을 맡은 곡이다.)

피터의 탈퇴로 팀이 존폐의 갈림길에 들어 섰을때 제네시스를 일으켜 세운 것은 바로 필이었다. 직접 리드 보컬을 맡으며 전면에 나선 'Trick Of The Tail' (1976년)부터 제네시스는 대중적인 사운드로 변모하며 이전보다 큰 인기를 누릴 수 있었다.

재즈 록 성향의 프로젝트 그룹 브랜드- X (Brand-X)의 활동 만으론 성에 차지 않던지 필은 1980년대 들어 그룹과 병행하여 솔로 뮤지션으로서의 첫 발을 내딛었다. 'In The Air Tonight'을 알린 데뷰작 'Face Value' (1981년)을 시작으로 슈프림즈의 곡을 리메이크한 'You Can't Hurry Love'가 수록된 2집 'Hello, I Must Be Going' (1982년)을 연속 히트시키면서 솔로로서도 만만치 않은 실력임을 과시한 필 콜린스는 1984년 'Against All Odds'로 처음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을 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에 공개된 제네시스의 'Abracab' , 'Duke' 역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밀리온 셀러를 기록한 'No Jacket Required' (1985년)는 두말할 필요 없는 필의 대표작. (이 앨범의 발표 직전 그는 어쓰, 윈드 & 파이어 출신의 필립 베일리와 'Easy Lover'를 히트시킴) 'One More Night', 'Susudio', 'Take Me Home' 등 대부분의 수록곡들이 인기 순위 상위를 차지하면서 오히려 소속 그룹의 인기를 뛰어넘는 명성을 쌓아갔다.

자연히 팀의 해산설이 흘러나왔지만 이듬해 공개된 제네시스의 'Invisible Touch'는 타이틀곡이 싱글 차트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뒤를 이어 'Tonight, Tonight, Tonight', 'In Too Deep', 'Land Of Confusion'을 10위 안에 진입시켰고 그해 최고의 공연 수입을 올린 뮤지션으로 기록될 만큼 그룹 최고 성공작이 되었다.

내용은 수준 이하였지만 'A Goovy Kind Of Love', 'Two Hearts'등 삽입곡만큼은 들을 만 했던 영화 '버스터 (Buster)'에 직접 주연으로 출연한 필은 솔로 4집 '... But Seriously' (1989년)으로 80년대말을 화려하게 마감했다.

국내에서도 크게 사랑 받은 'Another Day In Paradise', 에릭 클랩턴 (필은 에릭의 85년작 'Behind The Sun의 프로듀서를 맡은 바 있다.)이 인상적인 기타 솔로를 들려준 'I Wish It Would Rain Down', 'Do You Remember'등의 연속 히트로 전작에 이은 폭발적인 인기를 한몸에 받았고 이는 라이브 앨범 'Seriously Hits....Live' (1990년)으로 이어졌다.

멤버 각자의 솔로 활동을 접어두고 5년만에 다시 만든 제네시스의 새앨범 'We Can't Dance' (1991년)은 그간의 공백기에도 불구하고 'No Son Of Mine', 'I Can't Dance' 등 5곡을 싱글 차트 40위권에 진입시키는 호조를 보였고, 연일 매진으로 화제를 뿌린 세계 순회 공연 역시 성공적이었다. (이듬해 공연의 하이라이트를 모은 라이브 앨범 'The Way We Walk Vol.1 & 2'를 공개)

하지만 이후 필 콜린스의 활약은 그다지 순탄치만은 않았다. 대부분의 악기 연주까지 직접 담당하면서 야심차게 준비했던 'Both Sides' (1993년)은 예상외로 저조한 반응을 얻었고 솔로와 그룹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또한 1995년말 공식적으로 제네시스와의 결별을 선언하면서 끝을 맺게 되었다. 아프리칸 토속 음악이나 R&B 등 변화된 음악적 취향 (그룹 탈퇴의 주된 요인이기도 함)이 크게 작용한 'Dance Into The Light' (1996년) 역시 큰 주목을 받는데 실패했다.

한때의 인기스타로 기억될 듯 싶었지만 올 여름 우리는 한편의 블록버스터 영화와 함께 다시 필 콜린즈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빅밴드 앨범 발표에 이어 디즈니의 장편 애니메이션 '타잔 (Tarzan)' 사운드트랙에 참여, 몇해전 '라이언 킹 (Lion King)에서의 엘튼 존 (Elton John)만큼은 아니지만 'You'll Be In My Heart' (017 광고 삽입곡)를 히트시키며 필은 성공적인 복귀 무대를 갖게 되었다. (그는 최근 공개될 예정에 있는 제네시스의 베스트 앨범에서 전임 보컬리스트였던 피터 가브리엘과 듀엣으로 신곡 'Carpet Crawlers'를 부르기도 했다.)

클라우스 마이네 (스콜피온즈), 롭 헬포드 (前 주다스 프리스트)등과 더불어 음악계에선 몇안되는 대머리 보컬리스트. 그다지 인기를 얻기엔 치명적인 외모 (?)를 지닌 필 콜린즈이지만 그가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앞서가는 감각과 부단한 노력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파워를 앞세우는 여타 드러머들과는 다르게 왼손잡이라는 특이함을 이용, 세밀하게 박자를 쪼개는 그만의 장점을 살려 일류 드러머로 성장했고 보컬리스트의 공백을 틈타 남몰래 다진 보컬 솜씨를 선보였고 변화되는 음악의 흐름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 해내는 등 주변의 상황과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그는 적절히 이용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주변에서 영화, TV, 가수, CF 등 다영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날 수 있는데 그들을 사람들은 보통 엔터네이너 (Entertainer)라고 부른다. 하지만 각 분야 모두에서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는 이들은 극히 찾아보기 힘들다. 필 콜린스야말로 진정한 이 시대의 엔터네이너라고 말한다면 이는 결코 과장된 표현은 아닐 것이다. 그가 지금까지 이룬 성과는 누구도 따라오기 힘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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