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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문화인물 정부인 안동장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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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1월의 문화인물인 정부인 안동장씨(貞夫人 安東張氏.1598∼1680)는 시문과 서.화에 능할 뿐만 아니라 자녀교육에 귀감을 보임으로써 후세 위대한 어머니상으로 추앙받고 있다.

비록 현대 한국인들 대다수는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은 알아도 정부인 안동장씨라는 이름은 처음 들을 정도로 무명에 가깝다고 해도 조선조 여인 중에 공자나 맹자, 주자 같은 성현들에게 쓰던 군자(君子)라는 호칭을 들은 유일한 주인공이다.

현대인의 평균연령보다 긴 83세라는 장수를 누린 그의 경력 중에서 이채로운 것은 조선 중기에 이미 '규곤시의방'이라는 한글 요리서를 썼으며 시서화 외에 전문의 뺨치는 의술을 익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현모양처를 뛰어넘어 군자라고까지 칭송될 정도로 조선조에는 유명했다가 잊혀진 이름이 됐던 그가 다시 부활한 것은 소설가 이문열을 통해서였다.

반공주의 및 보수주의 색채를 농후하게 띠고 있는 이문열은 지난 96년 발표한 '선택'이라는 장편소설에서 안동장씨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당시 유행처럼 번지던 페미니즘 운동을 격렬하게 비판했다.

즉 이 소설 속의 안동장씨는 문자와 학문을 하겠다는 뜻을 세웠다가 나중에는 '아내로서 이 세상을 유지하고 어머니로서 보다 나은 다음 세상을 준비하는 것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라는 생각을 하고 평범한 여인으로 돌아간다.

이문열은 안동장씨를 빌어 페미니즘 운동을 비난했던 것인데 이를 계기로 페미니즘 논쟁이 다시 한번 격렬해지기도 했다.

어쨌든 이문열이 안동장씨를 반페미니즘 운동의 선두에 세운 것처럼 그는 부모를 잘 섬기고 자녀를 훌륭하게 키운 전형적인 현모양처였다.

선조 31년 경북 안동 금계리에서 경당 장흥효의 무남독녀로 태어나 19살에 부친의 제자이면서 이미 1남2녀를 둔 석계 이시명에게 시집갔으며 숙종 6년 83세를 일기로 경북 영양 석보촌에서 타계했다.

정부인이란 칭호는 그의 셋째아들 갈암 이현일이 산림(山林)으로 이조판서로 조정의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다.

문화부는 정부인 안동장씨의 생애와 업적을 알리기 위해 관련 단체와 협조해 유품전시회와 강연회 등 다양한 행사를 펼친다.

[서울=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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