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본격 대권 경쟁이 레임덕 불러 … 대통령은 소통에 더 힘써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집중토론 참석자들. 왼쪽부터 이상일 정치데스크, 오병상 수석논설위원, 허남진 정치분야 대기자, 문창극 대기자, 김진 정치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이정민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김경빈 기자]


중앙일보 사내 전문가들이 분야별로 2010년을 정리하고 2011년을 전망하는 집중토론 마지막 주제는 정치다. 2010년 1월 1일 새벽 벌어졌던 국회 파행은 12월 8일 그대로 재연됐다. 2010년의 시작과 끝이 정치 실종이었다. 올해엔 나아질 수 있을까. 새해 정치 전망은 복잡하고 무거웠다. 2012년 대통령 선거와 총선을 앞두고 정국이 더 복잡하게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대권 주자들의 부상과 정치판의 줄서기, 그 와중에 대통령의 힘이 빠지는 레임덕까지.

▶오병상(사회)=지난해는 천안함·연평도 같은 초대형 안보 이슈에 정치가 묻혀버린 듯하지만, 사실은 이명박 정부의 최대 현안인 4대 강과 세종시 문제가 결정된 중요한 해였다.

 ▶문창극=두 현안 처리 과정과 결과를 보면 한국 정치의 현실이 드러난다. 국가적 차원에서 여야의 정치적 협상이 정말 필요했던 세종시를 놓고는 협상이 이뤄지지 않았다. 개인적으론 여야가 합의해 세종시를 포기하고 대안을 찾았어야 했다고 본다. 반대로 정치적으로 서로 각을 세울 일이 아니었던 4대 강은 전면적으로 추진하며 밀어붙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가 너무 강하게 작용했다.

 ▶허남진=양보·협상을 통해 타협을 만드는 모습은 실종됐고, 정파적 대립과 포퓰리즘만 기승을 부렸다. 그 결과가 6·2 지방선거다. 여당이 아니라 정치가 패배한 것이다. 민심과 따로 노는 정치에 대한 실망표가 야당에 반사이익이 됐다. 유권자들은 정치에 대한 신뢰는커녕 미래에 대한 불안감만 더 느꼈다. 대통령은 타협의 정치를 외면하고, 여당은 청와대의 돌격대가 됐고, 야당은 포퓰리즘에 빠져 대안 부재의 모습을 보여줬다.

 ▶김진=지난해는 한국 정치에 북한 변수가 본격적으로 작용한 시발점이다. 만약 6·2 지방선거가 천안함 이후가 아니라 연평도 이후에 치러졌다면 그 결과는 전혀 달랐을 것이다. 올해도 북한이 한국 정치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문=북한 도발은 우리 정치에 당과 정파를 초월하는 단합의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었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이 야당 대표건 여당 인사건 불러 초당적인 협의체를 만들거나 합의를 이뤄냈어야 했는데…, 안타까웠다.

 ▶이상일=정치인 중에 정치의 후진성을 개탄하는 분들도 있지만 심각하게 반성해 스스로 바꾸려는 혁신의 노력이 안 보인다. 정치권이 입으로만 소통을 외치는 것 아닌가 싶다. 예컨대 지난 연말 예산 처리 과정에서 템플스테이 예산이 누락된 데 대해 여당 내부에선 ‘다른 방법으로라도 돈만 끌어다 주면 된다’는 반응이었다. 불교계의 자존심에 대한 고려가 없는 것이다.

 ▶김=대통령과 국민의 소통도 중요하다. 이 대통령은 이대로 가면 ‘기자회견을 가장 안 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수 있다. 천안함·연평도 사태 때에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2001년 9·11 테러 당시 테러 발생 한 시간 안에 성명을 발표했고, 12시간 만에 대국민담화를 냈다. 다음 날 오전엔 기자회견도 했다.

 ▶이정민=국회 몸싸움은 거의 매년 되풀이됐지만 지난해 경우 계획된 폭력사태였다. 협상하고 타협하다 그게 안 될 경우 감정이 격한 가운데 우발적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이 폭력인데, 지난해 우리 정치의 경우 앞의 과정이 모두 생략됐다.

 ▶오=지난해도 몸싸움 사진이 외신에서 ‘올해의 사진’으로 뽑혀 나라 망신이 됐는데, 왜 그런 일이 반복될까. 근절할 수는 없나.

 ▶이정민=의원들이 지도부 눈치를 보니까 싸움판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다. 다음 선거에서 공천을 받아야 하니까. 그래서 초선 의원이나 지역구가 없는 비례대표 의원들이 더 열심히 싸운다. 여야 없이 사정이 그렇다 보니 서로 봐주고 처벌하지 않아 악순환이 반복된다.

 ▶허=공천의 문제점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많아서 만든 것이 ‘상향공천’(지구당에서 후보를 뽑아 중앙당에 추천하는 방식)인데, 시늉만 하다가 그쳤다. 지난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하향식 공천을 했다가 유권자의 심판을 받았다. 공천권을 휘두른 여당 중진들이 다 떨어졌다. 유권자들의 의식이 더 앞서 있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개선을 못하고 있다.

 ▶김=공천혁명은 정치권의 핵심 과제다. 국민공천배심원단을 만드는 방법을 도입할 수도 있다. 일반 국민들이 직접 청문회에서 후보를 평가하는 것이다.

 ▶이상일=정당들마다 여러 방안을 도입하겠다고 얘기한다. 여론조사나 당원 투표, 대의원 투표로 뽑는 방법 등 상향공천 방안들이 얘기되고 있다. 나름의 장단점이 있다. 더불어 중요한 것은 정당 민주화다. 의원들이 당론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보다 소신껏 투표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오=대통령이 더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정민=역설적으로 이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이 소통에 장애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다. 이 대통령 지지율은 40% 선을 늘 유지하고 50%를 넘은 적도 있다. 다른 어떤 역대 대통령보다 높다. ‘대통령이 잘해서 그렇다’는 생각은 착시일 수 있다. 대통령이 잘한 것도 있겠지만, 다른 역대 대통령에 비해 정치 상황이 유리하다. 강력한 2인자가 없고, 특히 야당 세력이 약하다. 박근혜 전 대표를 2인자라 할 수 있지만 같은 여당이다. 대안을 찾지 못하는 부동층이 많아 상대적으로 대통령 지지율이 높다고 볼 수 있다.

 ▶허=대통령의 개인적 능력도 있었고, 국회 내에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여당의 ‘힘의 정치’도 작용했다고 본다. 지난해 이 대통령은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했고, 금융위기도 다른 나라보다 빨리 극복하는 등 성과를 냈다. 길게 봐서 ‘선진국으로 가는 기틀을 다지는 데 어느 정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올해는 서서히 대권 주자들이 움직일 것이다. 그러면 여당 의원들이 대통령의 말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지난 연말 예산안 처리처럼 ‘힘의 정치’가 통할지 의문이다. 자칫 레임덕에 빠질 수도 있는 만큼 대통령은 그동안 소홀히 했던 정치소통에 심혈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여당은 물론 야당, 나아가 국민과 직접 대화하며 감동을 줘야 한다.

 ▶이정민=의원회관에 가면 한나라당, 특히 수도권 의원들을 만나기 어렵다. 불안해서 지역구를 떠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 6·2 지방선거 패배는 여당 의원들에게 충격이었다. 대선을 앞둔 내년 총선(2012년 4월)에서 어떤 대권 후보의 뒤에 서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럴 경우 현직 대통령의 힘은 약해질 수도 있다.

 ▶이상일=올해 정치의 최대 관심사는 역시 대권 경쟁이다. 여권에선 박근혜 전 대표와 김문수 경기도지사, 오세훈 서울시장, 정몽준 전 대표 등이 주자군이다. 현재 지지율로는 박 전 대표가 압도적이다. 상당히 안정적이다. 박 전 대표 지지율이 30∼35% 나오는 상황에서 친이계 의원들도 박 전 대표와 긴장 관계를 유지할 경우 자기 지역구 선거에서 어려움을 겪을까 우려한다. 청와대도 직접적인 충돌은 피하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최근 ‘박근혜 대세론’이 먹히고 있다. 올해 김 지사나 오 시장 등이 어떤 파괴력을 보일지 지켜봐야 한다.

 ▶허=박 전 대표 지지율을 자세히 보면 재미있는 점이 있다. 지지율 30%대로 고공 행진을 하다가 지난해 초 세종시 수정안을 놓고 원칙론을 펴면서 25% 아래로 하락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 지난해 8월 대통령을 만난 후 살짝 웃는 모습을 보여준 뒤 다시 30%대를 회복했다. 상당한 시사점이 있다. 국민의 20%가량은 박 전 대표 골수 지지층으로 요지부동이다. 그 이상의 지지층은 대개 박 전 대표가 대립보다 화해·소통을 택할 때 모여든다. 따라서 박 전 대표가 앞으로 보여주는 모습 자체가 주요 변수다. 2년이면 짧지 않은 시간이다. 김 지사는 보수 진영으로 영역을 확대 중이다. 오 시장은 서울시의회와 갈등이 극에 달했을 때 돌연 시장직을 사퇴하고 대선 출마를 선언하는 빅 이벤트를 연출할 수 있다.

 ▶오=야권은 어떤가. 여론조사에선 의외로 유시민 참여정책연구원장이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이상일=유 원장의 경우 매니어 지지층이 있다. 하지만 유 원장은 지난해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야권 단일후보로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졌다. 비토 세력이 많다는 의미다. 민주당에선 대선 가능성을 상대적으로 높게 봐서 당원들이 뽑은 주자가 손학규 대표다. 한때 지지율 10%를 넘겼지만 현재는 다시 하향 정체다. 예산안 처리나 장외투쟁에서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했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오는 4월 재·보선 결과에 따라 입지가 크게 달라질 것이다.

 ▶문=지난해 말 민주당의 서울역 집회를 찾았더니 100명도 안 모였더라. 민주당 의원 10여 명과 보좌관 등 관계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예전 야당의 장외투쟁 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장외투쟁은 20년 전 정치로 보인다.

 ▶김=장외투쟁 정치는 손학규식 대권 행보다. 2006년 경기도지사를 마치고 민생 대장정에 나섰던 방식이다.

 ▶오=올해, 보다 나은 정치를 볼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문=정치인들이 창조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 당선만 생각하지 말고 이 나라가 어디로 가야 할지 크게 고민해야 한다. 절실한 고민 속에서 리더십이 나온다.

 ▶허=국회의원도 방에 세계지도를 걸어놓고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으며 10년, 50년 후 어디로 가야 할지에 대해 고심해야 한다.

 ▶김=여야 모두 포퓰리즘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이상일=대통령이 통합의 정치에 적극 나서야 한다. 대통령이 여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불렀지만 형식적인 느낌이 있었다. 그나마 야당과는 거의 없었다.

 ▶이정민=유권자가 깨어 있어야 한다. 의사당에서 폭력 휘두른 의원을 다음 선거에서 떨어뜨리면 누가 폭력에 나서겠는가. 유권자들이 너그럽게 넘어가선 안 된다.

정리=채병건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