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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타짜’였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99호 10면

얼마 전에 독자 메일을 받았다.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는가?”를 묻는 내용이었다. 그 질문에 내가 제대로 답할 자격도 능력도 안 되지만, 그래도 나름 성의껏 대답해 본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나도 아내도 노름을 즐기지 않는다. 사실 나는 노름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멀리한 경우지만 아내는 원래 노름을 싫어하는 것 같다. 그런데도 어쩌다 처가 식구들이 모여 화투를 치게 되면 매번 나는 돈을 잃고 아내는 딴다. 나는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우선 판이 벌어지면 아내는 자리 신경전을 벌인다. 담요 한 장을 놓고 둘러앉는 그 좁은 자리 중에 좋은 자리, 안 좋은 자리가 따로 있을 리 없을 터인데 말이다. 아무래도 아내가 자리 운운하는 것은 기선 제압을 위한 제스처다. 분위기를 잡는 것인데 그러니까 아내가 치는 것은 이른바 자기주도 화투다. 가령 아내는 선을 할 때 자기부터 패를 놓은 다음 시계방향으로 패를 돌린다. 문제 제기를 하면 그건 선 마음이라고 대꾸한다.

아내는 판 전체를 본다. 화투를 하는 동안 나는 내 패 보기에 급급한데 아내는 자기 패는 물론이지만 바닥에 펼쳐져 있는 패를 보고 남이 어떤 패를 내는지도 유심히 살펴본다. 화투를 칠 때 상대방이 무심코 하는 반응이나 표정도 놓치지 않는다. 나는 방심하다가 내 패를 아내에게 들키는 경우가 잦다. 아내는 절대 자신의 패를 내보이는 법이 없다. 언젠가 아내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원래 화투는 남의 패로 치는 거래.”

화투를 치면서 아내는 부지런히 남을 관찰하지만 자신을 성찰하는 데도 게으르지 않다. “노름이 시작되고 10분이 지나도록 호구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 판의 호구는 바로 자신일 가능성이 크다.” 어느 도박영화에 나오는 말이라고 하는데 확실히 아내에겐 자신을 돌아보는 감각이 발달해 있다.

패가 좋지 않으면 아내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그 판에서 빠진다. 화투를 치다 보면 돈을 따는 시기가 있고 잃는 시기가 있다. 아내는 그 지점을 잘 안다. 한창 돈을 따다가 어느 순간 잃기 시작하는 그 지점에 정확하게 아내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과일 좀 내올게.” 물론 아내가 내온 과일을 사람들이 다 먹고 그 판이 끝나도록 아내는 화투를 잡지 않는다. 내 경우는 오히려 돈을 잃기 시작하면 눈에 불을 켜고 화투판에 더 바짝 다가간다. 그러고는 결국 판돈과 시간과 체력을 탕진하는 것이다.

좋은 글이란 어떤 글일까? 중학교 때 국어를 가르치셨던 ‘예를 들면 선생님’의 말씀처럼 새롭고, 재미있고, 문제의식이 있고, 꿈이 있는 글일 것이다. 선생은 네 가지 모두 있으면 훌륭한 글이지만 한 가지만 있어도 좋은 글이라고 했다. 어쩌면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화투를 잘 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아내가 화투를 칠 때처럼 자신의 주변을 열심히 관찰하고 스스로를 성찰한다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관찰과 성찰이 좋은 글을 담보하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출발은 될 수 있지 않을까.

여기까지 쓰고 있는데 지나가던 아내가 뭘 쓰고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글쓰기와 화투의 공통점에 대해 쓰고 있다고 말한다. 둘 다 관찰과 성찰이 중요한 것 같다고.
내 말을 들은 아내는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관찰도 중요하고 성찰도 중요한데 진짜 중요한 건 현찰이지.”


김상득씨는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아내를 탐하다』와『대한민국 유부남헌장』『남편생태보고서』를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일하고 있다. 웃음과 눈물이 꼬물꼬물 묻어 있는 글을 쓰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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