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이백순 ‘3억 미스터리’ 끝내 못 밝히고 수사 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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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순 신한은행장이 3억원을 ‘외부 인사’에게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인사가 누구인지는 규명하지 못했다.”

 신한은행 임원 고소·고발 사건을 수사해온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는 29일 신상훈(62)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과 이백순(58) 신한은행장을 조사한 결과 이 행장이 3억원을 마련해 외부 인사에게 전달한 정황은 확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돈을 받은 사람이 누구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한다.

 정치적 의혹이 제기됐던 3억원의 행방이 미스터리로 남으면서 ‘부실 수사’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앞서 조영택 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 행장이 2007년 대통령 선거 직후 정권 실세에게 ‘보험료’로 3억원을 건넸다”고 주장했었다.

 이날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2008년 2월 당시 부행장이었던 이 행장은 은행장 비서실에 “라응찬 회장이 3억원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행장 비서실은 재일동포 주주 3명의 계좌에서 돈을 인출해 급하게 현금으로 3억원을 마련했다. 행장 비서실 관계자는 이 돈을 서울 남산 자유센터 주차장에 기다리고 있던 이 행장의 승용차 트렁크에 실었다. 비서실 관계자는 검찰에서 “이 행장이 ‘돈을 외부 인사에게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나중에 3억원은 이희건(93) 명예회장의 경영자문료에서 빼낸 돈으로 메워졌다. 당시 은행장이었던 신 전 사장은 나중에 이 사실을 보고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두 사람을 상대로 돈의 행방을 조사했지만 진술을 받아내는 데는 실패했다. 이 행장은 “3억원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부인했고, 신 전 사장도 “모르는 사실”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날 검찰은 신 전 사장과 이 행장에 대해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횡령 등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차명계좌를 운용했다는 등의 의혹을 받아온 라응찬(72)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에 대해선 혐의가 없다고 판단하고 사건을 종결했다. 지난 9월 2일 신한은행이 신 전 사장 등을 고소하면서 수사가 시작된 지 3개월여 만이다.

 검찰에 따르면 신 전 사장은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이 명예회장에게 지급하는 경영자문료 명목으로 회사돈 15억6600만원을 횡령한 혐의다. 이 명예회장 명의의 차명계좌를 통해 돈세탁을 한 의혹이 있다는 것이다. 이 중 2억원은 지난해 ‘박연차 게이트’ 수사 때 라 전 회장의 변호사 비용으로 쓰였다. 그는 2006~2007년 이미 부실 상태였던 투모로 그룹에 438억원을 대출하는 과정에 관여해 신한은행에 손해를 입힌 혐의도 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신 전 사장과 이 행장은 재일동포 주주로부터 각각 8억6000만원과 5억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당초 김준규 총장의 지시에 따라 신 전 사장과 이 행장의 구속 수사 방침을 세우고 사전구속영장 작성까지 마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영장 청구 방침이 알려지면서 김 총장이 ‘수사 가이드라인’을 수사팀에 내렸다는 비판 여론이 일었다. 이에 대해 윤갑근 3차장검사는 “ ‘고소 취하’ 합의를 통해 권력을 나눠 갖는 행태는 바로잡아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영장 청구를 검토한 건 사실”이라며 “ 신 전 사장이 횡령자금 일부를 공탁하는 등의 정상을 참작해 불구속 기소로 결론을 내리게 됐다”고 말했다.

 검찰은 라 전 회장의 차명계좌 운용 의혹에 대해선 “과태료 사안이라 형사처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이 명예회장 자문료 횡령에 관여한 사실을 밝혀내지 못했다. 이 때문에 검찰은 지난해에 이어 또 다시 라 전 회장에게 면죄부를 줬으며, 수사 의지도 없었다는 비판을 받게 됐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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