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박봉 쪼개 청년 일자리 만든 ‘멋진 시골 공무원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9면

충남 논산시 은진면사무소에서 23일 행정인턴 류혜진(25·왼쪽)씨가 지시하 면장(가운데)과 함께 민원인을 맞이하고 있다. [김성태 프리랜서]


24일 오전 10시 충남 논산시 은진면 사무소 민원실. 강신선(71)씨 등 주민 3∼4명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순간 민원데스크에 있던 20대 여직원 한 명이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라며 반갑게 맞았다. 4월부터 이곳에서 행정인턴 직원으로 근무하는 류혜진(25·논산시 화지동)씨다. 류씨는 주민들이 요청한 주민등록 등본 등 민원서류를 발급해 주고 현관까지 따라나가 배웅했다. 그는 “비록 인턴이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연말을 보낼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2008년 대학을 졸업한 뒤 올해 4월까지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류씨가 행정인턴으로 일하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은진면 사무소 직원 15명 전원이 박봉을 쪼개 마련한 기금으로 채용한 특별한 인력이기 때문이다. 면사무소의 ‘봉급 모아 일자리 만들기 작업’은 지시하(55) 면장 주도로 지난해 4월 시작됐다. 지 면장은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한데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 사는 공직자가 모른 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고심 끝에 급여의 일부를 모아 일자리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직원회의를 열고 동참을 제의했다. 직원들은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면사무소 한홍(52) 총무계장은 “직원들을 가족같이 대해줘 신망이 두터운 면장님의 제안에 기꺼이 응했다”고 말했다.

 지 면장은 매달 본봉의 10%(29만7000원)를 기부한다. 나머지 직원들은 3∼5%(3만∼13만원)를 떼낸다. 별도의 계좌에 자동 이체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매달 100여만원이 모인다. 면사무소 직원 김명환(50·7급)씨는 “매월 급여일(20일)은 나눔을 실천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쁨이 두 배가 된다”고 말했다.

 입소문이 퍼지자 주민자치위원회·새마을지도자회·의용소방대 등 지역 사회단체도 50만원(연간)씩 내놓았다. 은진면 지역 이장 28명도 이장 수당(월 20만원)의 10%씩 기부하고 있다. 면사무소 앞 칼국수집 주인 임창섭씨도 매달 10만원을 면사무소에 전달한다. 임씨는 “공무원들이 지역을 위해 쉽지 않은 결정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면사무소는 지난해 연간 2400여만원이 모이자 행정 인턴 2명을 채용했다. 논산시 고용안정센터에 의뢰, 지역 출신의 젊은 인력(대졸)을 선발했다. 4월부터 1년간 연봉 1200만원을 지급하는 조건이었다. 4대 보험료(월 3만∼4만원)도 기금에서 내준다. 올해는 사회단체 기부 등이 줄자 1명만 고용했다. 행정인턴은 지방세 납부 고지서를 발송하거나 민원서류 발급 등의 업무를 한다. 지 면장은 “조그만 노력이 모여 이뤄낸 성과”라고 말했다. 류씨는 “정규직 공무원이 되는 게 꿈”이라며 “공직자가 되면 받은 것 이상으로 남을 도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 면장은 2005년 부임하자마자 면장실을 주민이나 직원 쉼터로 개방했다. 쉼터에는 날마다 주민 10여 명이 찾아와 커피를 마시며 면사무소 직원들과 대화를 나눈다.

논산=김방현 기자
사진=김성태 프리랜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