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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Insight] 『내 생의 마지막 저녁식사』 독일 작가 되르테 쉬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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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켜집니다. “오늘도 또 한 분이 하늘나라로 갔구나….”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호스피스 ‘로이히트포이어’. ‘등대의 불빛’이라는 뜻의 이 호스피스에서 일하는 요리사는 현관에 있는 초를 보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 요리사는 죽음을 앞둔 이들을 위해 ‘마지막 식사’를 정성스레 만듭니다. 암 덩어리가 위를 완전히 차지해 거의 먹을 수 없는 55세 여교사를 위한 케이크, 에이즈로 삶이 꺼져가는 젊은이를 위한 햄버거 세트, 항암치료 부작용으로 맛을 볼 수도 냄새를 맡을 수도 없는 부인을 위한 알록달록한 수프, 종양이 식도를 막아 삼키는 것이 불가능한 환자를 위한 고기 요리 …. 세상과 작별해야 하는 순간, 사람들은 마지막 식사로 무엇을 찾을까요?

로이히트포이어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찍고, 책(『내 생의 마지막 저녁식사』)으로도 낸 독일의 작가 겸 프리랜서인 되르테 쉬퍼(50)를 e-메일로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김창규 기자

●요리사를 통해 호스피스를 들여다보는 다큐멘터리로 독일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요. 착안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어느 날 저녁 영화를 보러 갔는데 으레 그렇듯 영화 시작 전에 광고가 길었어요.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는데 갑자기 주의를 확 끄는 광고가 있었지요. 부엌을 배경으로 요리사가 커다란 프라이팬을 손에 들고 있었는데요. 프라이팬에는 팬케이크가 담겨 있었고, 요리사는 팬케이크를 공중으로 던져 뒤집은 다음 다시 프라이팬으로 받았어요. 그것은 한 호스피스에 기부를 요청하는 광고 캠페인이었어요.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 팬케이크를 구워주는 요리사라니…. 이 생각은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어요. 다음날 아침 함부르크의 호스피스 로이히트포이어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음식이라는 주제를 (신문이나 TV에 자주 등장하는 유명 요리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조명해 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그리고 금기를 깨고, 심각하고 슬픈 주제를 음식을 통해 조명하면서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을 약간 덜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호스피스 입주민이 죽음을 코앞에 두고 삶의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모습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이 호스피스에서 일하는 요리사는 고급 음식점 출신입니다. 호스피스에 있는 사람들은 음식을 넘기기도 어려울 텐데요. 호스피스에 요리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네. 먹는 것은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이잖아요. 입주민에게 약간의 식욕이 돌 때 원하는 것을 만들어줄 수 있는 요리사가 있다는 건 행복한 일입니다. 그것은 입주민의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이며, 입주민을 존중하는 일이지요. ‘먹는다는 것은 아직 살아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던 요리사(루프레히트 슈미트)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실제로 입주민이 음식을 즐겨 먹나요.

 “다양합니다. 호스피스에 입주한 직후에는 몇 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고 말했던 사람이 상태가 좋아져 6주간 호스피스 요리사의 최고의 손님이 된 경우도 있지요. 이 사람은 식욕이 날로 늘어 많은 양의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고, 몸무게도 불었지요. 그러나 먹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도, 소화 기관이 받아주지 않아 먹지 못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호스피스에 입주한 사람들은 생의 마지막 날 ‘최후의 만찬’으로 무엇을 찾습니까.

 “보통 음식이지요. 최신식 프랑스 요리나 이탈리아 요리가 아니에요. 그냥 어릴 때 먹었던 애플 케이크, 미트볼 같은 전통 음식입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은 무엇보다 추억이 얽힌 음식을 원합니다. 그 맛을 그리도 잊을 수 없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추억과 기억이기 때문이지요.”

●과거나 추억에 대한 향수가 마지막 음식을 찾는 주요 기준이 된다는 거군요.

 “그렇다고 생각해요. 행복한 시간에 대한, 평범했던 날들에 대한 기억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일요일에 즐겨 해 먹던 음식이건, 여름 방학에 할머니 집에 갔을 때 할머니가 해주셨던 음식이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제일 즐겨 먹는 음식은 무엇인가요.

 “가장 인기 있는 건 전형적인 독일 음식인 각종 감자요리입니다. 삶아서, 퓨레(삶아 으깨 만든 것)로, 혹은 샐러드로 말이죠. 남자들은 스테이크를 먹고 싶어 하지만 쉽지는 않아요. 남자들은 기운이 나는 음식이라고 하면 스테이크를 떠올리고, 호스피스 주민이 가장 바라는 것은 ‘기운을 내는 것’이에요. 하지만 스테이크는 소화가 잘 안 되기 때문에 먹을 수 없는 입주민이 많지요. 그러나 그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아요. 이런 상황에서 수프처럼 가벼운 음식을 먹도록 유도하는 것은 요리사의 기술이지요. 한번은 요리사가 종양이 식도를 누르고 있어서 삼킬 수 없는 환자에게 티본스테이크를 준비해 줬습니다. 환자는 고기 조각을 조심스럽게 우물거리고는 접시에 뱉었어요. 그러고는 ‘이제 더 이상 원이 없어요’라고 하더라고요.”

●이곳의 1인당 하루 식비가 7유로(약 1만원)인데 입주민이 원하는 음식을 어떻게 만들어 줄 수가 있나요.

 “로이히트포이어 요리사의 임금은 전적으로 후원금으로 충당되고 있어요. 의료보험청에서는 호스피스 환자 한 명당 하루에 7유로의 식비를 지원하지요. 물론 많지 않은 금액입니다. 그러나 이곳 요리사는 그 돈으로 꾸려갈 수 있어요. 모든 입주민이 먹을 수 있거나, 먹고 싶어 하는 상태는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또 먹을 수 있다 해도 아주 적은 양만 먹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입주민에게 제공되는 ‘럭셔리 음식’은 캐비아나 가재를 재료로 한 값비싼 음식이 아니라,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건강했던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음식이지요.”

호스피스 요리사 루프레히트 슈미트.

●요리사 루프레히트 슈미트는 어떤 사람인가요.

 “아주 특별한 사람입니다. 사회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나 할까요.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지만, 그런 삶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죠. 자신이 해준 음식을 먹는 사람과 접촉할 수조차 없는 일은 그에게 의미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는 호스피스에서 이상적인 일자리를 발견했지요. 그가 ‘호스피스에서 일자리를 얻은 것은 내겐 복권 당첨이었다’라고 할 때 그가 어떤 사람인지 실감했습니다.”

●이 호스피스에서 가장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진 사람은 누구였나요.

 “모든 만남이 다 감동적이었어요. 그러나 특히 토마스 베버의 운명이 가장 기구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작은 에너지 컨설팅회사를 하던 그가 간암에 걸려 투병생활을 하는 중에 아내마저 폐암에 걸려 몇 달 만에 세상을 떠났어요. 당시 그는 막 첫 번째 항암치료를 마친 상태였지요. 그는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간암에 걸렸고, 아내는 평생 담배 한 개비 안 피웠는데 폐암에 걸렸다고 했어요. 그가 내게 ‘인생이 불공평하다’고 말할 때 가슴이 아팠어요. 그가 죽는다는 게 어떤 느낌일지, 죽음 후에는 어떻게 될지, 내가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을 때, 감정을 추스르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울지는 않았어요. 베버는 아주 드라이한 유머를 해서, 우리는 대화를 하다가 큰 소리로 웃곤 했거든요. 그는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2년5일 만에 아내 곁으로 갔습니다.”

●이곳에 입주해 있는 사람은 모두 암환자인가요.

 “로이히트포이어는 그 당시 다른 호스피스와 마찬가지로 에이즈 환자에게 마지막 거처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됐습니다. 그러나 그 후 새로운 약이 나오면서 에이즈로 숨지는 사람이 크게 줄어들었지요. 그래서 11년 전 호스피스가 설립된 직후 치유 불가능한 암환자도 호스피스에 입주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들의 평균 체류 기간은 2~3주 정도입니다.”

●결국 호스피스 입주민은 다가오는 죽음에 초연한 자세를 보이나요.

 “모두가 죽음에 그런 초연한 자세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따라 각자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세월 많은 감정적인 부담을 갖고 살아왔고 개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과제가 있는 사람은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하기가 힘든 것 같아요.”

●삶의 마지막 순간, 사람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한마디로 잘라서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혼자 있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가장 필요할 것 같아요.”

●당신은 ‘최후의 만찬’으로 어떤 음식을 먹겠습니까.

 “아직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한국의 독자는 어떠신가요.”

되르테 쉬퍼

50세. 독일의 작가 겸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다. 어린 시절을 쾰른에서 보내고, 함부르크로 옮겨 예술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오래전부터 프리랜서 방송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 일하고 있다. 그는 “나의 관심 분야는 늘 사람 이야기였다”며 “어려운 주제를 대중이 접근할 수 있도록 소개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2009년 독일 ARD방송국에서 호스피스 로이히트포이어의 사람 이야기를 다룬 TV 다큐멘터리 ‘호스피스의 럭셔리 요리사’를 만들어 독일에서 가장 유명하고 오래된 기자상인 ‘에리히-클라우분데’를 받았다. 로이히트포이어를 취재한 후 그는 일반 독자에게 “삶을 즐기라, 내일로 미루지 말라”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일흔 살인 그의 지인은 그의 책 『내 생의 마지막 저녁식사』를 읽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고 소개했다. “되르테, 죽는 건 정말 싫어. 하지만 언젠가는 우리 모두 죽어야 하지. 그 사실엔 변함이 없어. 하지만 마지막 날을 로이히트포이어 같은 호스피스에서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별이 조금은 더 쉬워질 것 같아.”

최고 셰프들 ‘내 최후의 만찬은 …’

고든 램지는 쇠고기 구이
제이미 올리버는 스파게티

고든 램지

“만약 당신이 내일 죽는다면 어떤 음식을 마지막 식사로 선택할까요?”

바쁘게 살다 보면 이런 질문에 당황하기도 할 겁니다. 아직 답이 준비돼 있지 않기 때문이지요.

독일의 호스피스 ‘로이히트포이어’에 입주해 있는 사람들 이야기를 쓴 되르테 쉬퍼도 이 질문에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호스피스에서 죽음을 앞둔 환자를 만나 보니 그들이 마지막 식사로 선택한 건 고상한 음식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사람은 죽음이 임박하면 무엇을 가장 먼저 떠올릴까요.

아마 추억인가 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즐거운 한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레 그들과 먹었던 음식이 생각나겠지요. 그래서 생의 마지막 식사로 어린 시절, 고향 등 추억이 어린 보통 음식을 찾나 봅니다.

깊이 있는 맛으로 세상 사람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는 세계적 요리사는 어떨까요. 대다수의 요리사는 자신이 만들고 있는 복잡하고 이국적인 최고급 요리를 마지막 식사로 꼽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선택한 건 단순한 음식이었습니다. 프라이드 치킨, 참치 샌드위치나 핫도그 같은 것 말이죠.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김밥이나 만두, 집밥 같은 것이겠지요.

여류 사진작가 멜라니 듀니아는 몇 년 전 50명의 유명 요리사에게 ‘나의 최후의 만찬’을 물어 책으로 냈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미국의 세계적인 셰프 스콧 코난트와 타일러 플로렌스는 프라이드치킨을, 자크 페핀은 핫도그를 ‘마지막 식사’로 꼽았습니다. 영국의 고든 램지와 에이프리얼 블룸필드는 쇠고기 구이를, 제이미 올리버는 스파게티를 선택했지요.

고든 램지는 미국과 유럽에서 보유하고 있는 레스토랑이 미슐랭 별을 12개나 받을 정도로 유명한 요리사입니다. 그런 그가 최후의 만찬으로 쇠고기 구이를 고른 것은 바로 어린 시절의 추억 때문입니다. 그는 어릴 때 주일학교에도 가고, 공원에도 갔습니다. 그런 다음 오후 2시면 점심을 먹으러 집에 가야만 했지요. 이를 회상하면서 그는 스코틀랜드에 살 때 먹던 구이 중심의 가정식을 떠올린 것입니다. 미국 LA 근처에서 4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요리사 수전 고인은 토마토를 골랐습니다. 그가 ‘꿈의 직장’에서 처음으로 먹은 음식이었기 때문이지요.

사형수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에서는 사형수에게 사형 집행 전날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음식을 물어본 뒤 이를 제공하지요. 사형수의 마지막 음식을 4년간 기록했던 배우 마이크 랜들맨은 사형수의 80%가 치즈버거, 스테이크, 프라이드 치킨을 마지막 식사로 요청했다고 말합니다. 좋았던 시절 먹었던 음식이겠지요. 독특한 요구도 있습니다. 11세 여아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사형수는 씨 없는 검은 올리브 하나를, 자기가 원하는 목걸이를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살인을 저지른 사형수는 ‘졸리 랜처스’ 사탕 한 봉지를 원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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