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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 극단 읍으로 이사 왔다 … 시골 주민 삶 연극 대본이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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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난 11일 오후 화천 선등거리 점등식에 앞서 열린 공연. 극단 ‘뛰다’의 작품으로 화천을 상징하는 인형 20여 개가 선보였다. [극단 뛰다 제공]


11일 오후 화천읍 아리 선등거리. 산천어축제를 앞두고 열린 선등거리 점등식 식전행사로 왕과 여왕, 커다란 물고기 등 20여 가지 다양한 인형이 등장하는 공연이 펼쳐졌다. ‘사람과 인형 프로젝트 인(in) 화천’이란 이름의 작품으로 대지의 여신과 댐을 관장하는 왕, 물고기를 다스리는 여왕 등 화천을 상징하는 요소들이 갈등하고 화합하는 내용을 담았다. 올해 의정부에서 화천으로 이주한 극단 ‘뛰다’의 작품이다. 작품 제작과 공연에는 극단 단원뿐 아니라 호주의 스너프 페펫극단, 지역주민도 참여했다. 여신 인형을 만들고 공연 때는 댐 역할을 맡았던 간동면 유촌교회 목사 임희영(44)씨는 “화천에는 이런 것이 없었는데 작업하는 동안 재미와 보람을 느꼈다”며 “앞으로도 극단의 작업에 동참하겠다”고 말했다.

 화천에 둥지를 튼 극단 ‘뛰다’가 지역에 새로운 문화를 가꿔가고 있다. ‘열린 연극’ ‘자연친화적인 연극’ ‘찾아가는 연극’을 표방하며 2001년 창단한 극단 ‘뛰다’는 서울 중심의 활동을 접고 올해 6월 화천으로 옮겼다. 단원 14명과 가족 모두가 화천으로 주소를 옮겼다. 두 달 동안 폐교된 신읍리 옛 신명분교를 리모델링 해 ‘화천공연예술 텃밭’을 꾸몄다.

 ‘뛰다’가 도시를 벗어나 농촌으로 이주한 것은 창단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것. 소비적이고 소모적인 도시에서의 연극 활동에서 벗어나 사람과 만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고민해온 극단은 단지 극장에서 관람할 수 있는 예술이 아닌 일상에서 묻어나는 삶의 예술, 자연과 삶과 예술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문화적 환경을 가꾸기 위해 농촌으로 눈을 돌렸다. 지난해 6월 구체적으로 화천 이주에 대한 논의를 시작, 7개월만인 지난 1월 화천군과 문화예술진흥을 위한 협약(MOU)을 체결했다.

 극단은 10월 화천으로 이주한 후 첫 창작품 ‘내가 그랬다고 너는 그러지 못한다’를 춘천과 서울 무대에 올리면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재개했다. 대표작 ‘하륵이야기’를 춘천인형극장과 일본 돗토리현에서 공연했다.

 극단은 지역과 지역 주민의 얘기를 소재로 공동체 기반의 작품에 관심을 쏟고 있다. 이를 위해 이야기 발굴단이 주민을 만나 얘기 듣고, 녹취하고, 사진을 찍는 작업을 했다. 극단은 이 같은 이야기를 공유하는 자리를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결과물을 도출할 계획이다.

또 연극을 통한 교육프로그램도 적극 운영할 계획이다. 내년 초 화천고 등 학교 연극반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청소년수련관에서 더 진전된 프로그램도 운영할 방침이다. 학생뿐 아니다. 청장년은 물론 어르신 등 주민 참여를 통한 프로그램도 운영할 계획이다.

 선등거리 점등식에서 공연도 이 일환이다. 외국 극단을 초청해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여기에 학생과 주민이 참여한 것이다. 극단은 내년 3월 호주 스너프 페펫극단과 공동으로 이 작품을 완성해 하이서울페스티벌과 안산거리축제 의정부음악축제 등에 선보일 계획이다.

 극단은 외국과의 교류를 확대, 2011년 말 인도와의 레지던스 교환프로그램을 운영해 공동 작품을 창작할 계획이다. 일본 돗토리현 새 극단(버드 씨어터)과는 두 지역축제에 서로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극단은 이를 위해 내년에 텃밭에 스튜디오를 꾸미고 소극장도 갖추는 등 인프라 구축하는 등 창작촌을 조성할 계획이다. 극단의 연출가 배요섭(44)씨는 “지역에서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고, 지역 축제에 문화예술프로그램을 공급하는 등 일상 생활 속에 예술이 꽃 피고 열매 맺는 문화예술의 밭을 일구겠다”고 말했다.

이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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