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거친 블랙 코미디〈파이트 클럽(Fight Club)〉

중앙일보

입력

이 영화는 코미디이다. 만약 이 영화에서 '존재의 의미'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한다면 그 것이야 말로 코미디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세기말적'존재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계속 던진다. 그리고 나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기관총처럼 되돌려 주지만, 결국 처음 질문이 무엇인지를 잊게 만든다.

영화 〈세븐(Seven)〉의 감독 데이빗 핀쳐(David Fincher)가 새로 내놓은 〈파이트 클럽(FightClub)〉은 극도로 사실적인 폭력장면으로 인해 개봉전 시사회 이후부터 말이 많았다. 올해 초 미국 콜로라도주 한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격사건 이후 할리우드 영화계가 한참 책임추궁을 당한 요즘, 선혈이 낭자 이 영화가 또 다시 말썽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이해가 갈 만 하지만, 이 영화는 오히려 폭력의 실체를 보여준다고도 말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면서 죽어가는 대부분 영화와는 달리 폭력을 미화하려 하려는 의도는 찾기 어렵다.

이 영화의 나레이터이자 주인공(에드워드 노튼 (Edward Norton))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처참한 교통사고를 조사해 자동차 결함을 찾아내고 리콜을 할 것인를 평가하는 회사원이다. 그는 심한 불면증때문에 의사를 찾지만 수면제 대신 '진정한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모이는 환자모임에서 삶의 의미와 한바탕의 울음, 그리고 단잠을 찾는다. 자신과 같은 가짜 환자 '말라'(헬레나 몬햄 카터(Helena Bonham Carter))를 발견하고 일시적인 좌절을 겪기도 한다.디자인 가구가 가득한 자신의 아파트가 의문의 폭파사고로 사라진 후, 그는 여행 도중 만나는 일회용 친구들 중 고급 비누 세일즈맨 '타일러' (브래드 피트(Brad Pitt))에게 잠시 묵을 곳을 청한다. 그 때 허름한 술집주차장에서 그와 타일러는 재미삼아 주먹질을 교환하게 되고, 이 유치한 장난이 세상살기가 답답한 보통남자들의 무시무시란 모임으로 커지게 된다.

매일 밤 술집 지하실에서 상대방이 항복할 때 까지 맨주먹으로 서로를 두들겨 패는
'파이트 클럽'은 남에게 절대 조직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는 규칙에도 불고하고 날이 갈수록 회원이 늘어간다. 어둡고 더러운 지하실 바닥에 골판지 몇 장이 깔려있고 그 위에서 밤새도록 보통 남자들의 코가 깨지고 입술이 터지며 이가 부러져 나간다. 무술경기도 아니고 프로레슬링도 아니다. 환호도, 조명도 없다. 단지 남는 것은 피투성이가 된 몸뚱아리와 일상에서 벗어났다고 하는 이상한 해방감이다.

이런 '유치하지만 심각한 장난'은 점점 그 정도를 넘어서서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전국적인 반사회 폭력집단으로 성장한다. 도시 한복판 버려진 집에서 타일러와 함께 살게된 주인공은 이 조직을 혐오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점차 빠져들게 된다. 부조리한 세상을 골탕먹이는 '파이트 클럽'은 "모든 것을 버려야 자유로워 진다"는 어떻게 보면 근사한 철학을 바탕으로 종횡무진. 주인공은 브레이크 없는 차를 몰 듯 두려움속에서도 묘한 희열을 느낀다.

에드워드 노튼은 실감나는 연기와 나레이션으로 시종 이 영화를 이끌어 간다. 그 반면 브레드 피트는 경직된 연기로 일관하지만, 사실 이 영화는 브래드 피트의 영화다. 패션모델 버금가는 미모에 걸친 70년대 식 요란한 프린트 셔츠와 선글라스. 거들먹거리며 흘리는 미소와 이 영화를 위해 다듬은 근육. 쉬지 않고 뱉어대는 냉소. 연기는 두째치고 있는 그 자체로 한 몫하는 배우는 브래드 피트 만은 아니겠지만. 망가진 인생 '말라' 역을 한 헬레나 몬햄 카터는 억지로 끼워넣은 역인 까닭에 별 다른 빛을 보지 못한다.

영화 '세븐'에서 보여준 핀쳐 감독의 자극적인 시각언어가 '파이트 클럽'에서도 생생히 살아있다. 거의 분간이 어려울 정도로 어두운 조명. 극도의 클로즈 업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장면들. 뮤직 비디오식 편집. '블레이드 러너'를 연상케 하는 암울한 회색 도시풍경. 수시로 시각적 구두점을 찍는 정지화면들. 자제함없는 상상력이 만들어낸 강력한 충격요법은 90년대식 미국 필름 느와르라고 할 만 하다.

이 영화를 보면서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면 너무나도 지루하고 난해하기만 한 두 시간 이 될 것이다. 이야기 자체로는 내내 갈 곳 없이 산만하게 표류하다 마지막 부분에 갑자기 예상없는 '폭탄'이 터지지만 이는 그 동안의 혼란을 더 할 뿐이다. 소비자로써만 존재 의미를 찾는 고도 자본주의사회와 갈 곳을 잃은 무력한 남성상에 대한 질문들은 비판이 아닌 냉소적인 희화로 답변될 뿐이다. 테리 길리엄 (Terry Gilliam)감독의 영화 〈브라질 (Brazil)〉의 90년 대 판, 또는 공상과학 요소를 뺀 최근 영화 〈매트릭스(Matrix)〉다.

부조리하고 숨막히는 사회생활에서 자신을 잃어 버리고, 크레딧 카드 고지서가 주머니와 머리속을 메우는 '보통 남자들'이 순간적으로 한 없이 유치해 보고 싶은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그런 블랙코미디 영화다. 크레딧 카드회사를 폭파시키고 싶은 사람이 어디 한 둘 뿐 이었을까.

공식 영화 웹사이트 http://www.foxmovies.com/fightclub/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