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병 포기 마세요” … 근위축증 아들과 21년째 등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9면

18일 서울 개포동 집에서 어머니 이원옥(64·오른쪽)씨가 아들 신형진(27)씨를 보며 웃고 있다. 뒤로 신씨가 공부할 때 쓰는 안구마우스가 달린 컴퓨터가 보인다. 척추성 근위축증을 앓고 있는 신씨는 내년 2월 연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다. 9년 만이다. [조용철 기자]


엄마는 이제 더 이상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 21년을 다닌 학교다. 온몸이 마비돼 침대에 누워 생활하는 아들을 데리고 초·중·고 12년, 대학 9년 동안 학교에 다녔다. 20일 아들은 마지막 전공시험을 치른다. 척추성 근위축증(SMA)을 안고 태어난 신형진(27)씨와 엄마 이원옥(64)씨 이야기다. 신씨는 내년 2월 연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다.

 18일 서울 개포동의 한 아파트. 신씨는 컴퓨터 앞에 누워 눈을 깜빡이며 공부를 하고 있었다. “이제 혼자서도 공부할 수 있죠. 안구마우스 덕분에요. 전엔 제가 자정 넘도록 책장을 넘겨줬어요.” 소파에 앉아 아들을 지켜보던 이씨가 말했다.

 하지만 아직도 학교에 가려면 엄마가 필요하다. 이씨는 매일 아들을 침대째 차에 태워 강의실로 갔다. “수업에 들어가면 더 불안해요. 호흡곤란이 올까봐. 숨을 못 쉬면 바로 죽는 거잖아요. 교실 밖에서 앰부(휴대용 산소공급기)를 든 채 기다려요. 언제든 들어갈 수 있게.” 도우미 학생이 나와 “형이 이상해요”하면 이씨는 달려들어가 앰부를 아들의 입에 가져다 댔다.

 아들이 근육병을 앓고 있다는 걸 안 건 생후 7개월 즈음이다. 백일이 넘도록 보행기를 밀지 못하는 게 이상했지만 남자 아이라 발육이 늦는 줄 알았다. 주변의 채근에 못 이겨 병원을 찾았다. “이상하긴 한데 병명을 모르겠다”고 했다. “미국에서 SMA 진단을 받은 게 첫돌 이틀 전이었어요. 1년도 못 살 거라더군요. 남들은 잔치하는 날, 형진이는 사형선고를 받았어요.”

 한글조차 가르치지 않았다. 얼마 살지도 못할 아이에게 공부로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는 취학통지서가 나올 때까지 살아주었다. “취학통지서를 보니까 그제야 엄마가 뭘 했나 싶더군요. 아이는 이렇게 잘 자라주었는데….”

 아들의 학교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감기만 걸려도 폐렴으로 번져 보름이고 한 달이고 입원하는 날이 많았다. 초등학교 6년간 등교한 날을 따지면 3년 남짓이다. “특수학교에 보내라”는 교사의 핀잔을 들은 적도 있다. 그래도 아이는 학교에 가고 싶어 했다. 친구들과 잘 어울렸고 공부도 곧잘 했다.

 아들 때문에 힘들지 않으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씨는 “아들이 나를 가르쳤다”고 말한다. 2004년의 일이다. 작은 침대에 갇혀 사는 아들이 안쓰러워 미국 외할머니 팔순 잔치에 데리고 나섰다. 그런데 도착한 지 하루 만에 응급실에 실려갔다. LA 외곽 병원 의료진은 근육병 환자를 다루기에 역부족이었다. 인공호흡기를 달고도 숨쉬기 힘들어 했다. 아들을 살린 건 러포트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이었다. 그는 미군 특별수송기와 4명의 군의관을 지원했다.

 “세금 한 푼 낸 적 없는 나라가 내 아일 살렸어요. 얼굴 모르는 남을 도울 이유가 생긴 거죠.” 이씨는 매년 대기업 임원인 남편의 보너스 등을 모아 강남세브란스병원에 수천만원씩을 기부하고 있다. “형진이 때문에 두 딸에게는 제대로 해 준 게 없었는데, 다들 잘 자라줘 고맙고 미안하다”고 했다.

 “한 게 없다”며 인터뷰를 고사하던 이씨는 “형진이 같은 아이와 그 부모가 형진이를 보면서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고쳐 먹었다. “1년도 못 살 거라던 아이가 27년을 살아 학사모를 쓰네요. 형진이가 했으니 다른 아이들도 할 수 있어요. 포기하지만 않으면 됩니다.” 

글=정선언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 2010 중앙일보 올해의 뉴스, 인물 투표하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