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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먹을거리 우왕좌왕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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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호 30면

대한민국에는 조선·철강·반도체·무선통신 분야의 세계 최고 기업들이 있다. 그러나 지금 잘되는 사업이 10년 후에도 잘될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1980∼90년대 일본은 국내시장의 우월성을 지나치게 과신한 나머지 눈앞에 다가오는 컴퓨터·인터넷·이동통신의 거대한 디지털 물결을 놓치고 말았다.

과거는 미래의 거울이다. 우리나라 역대 정부는 모두 미래성장전략을 추진했다. 김영삼 정부는 G7
프로젝트를 수립해 2001년까지 특정 제품·기술 분야에서 세계 일류 기술을 확보해 과학기술 선진 7개국으로 진입하려 했다.

김대중 정부는 21세기 프런티어 연구개발 사업을 추진해 국가경쟁력의 토대가 될 핵심기술을 개발하려 했다. 노무현 정부는 지능형 로봇, 미래형 자동차 등 10대 성장동력산업을 목표로 내세웠다.

이명박 정부 출범 뒤에도 차세대 먹을거리 산업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2008년 9월 신성장동력기획단은 에너지·환경, 수송시스템, 뉴 IT, 융합신산업, 바이오, 지식서비스 등 22개 신성장동력을 선정했다. 노무현 정부의 10대 성장동력에다 에너지·환경 관련 5대 분야를 추가한 것이다.

지난해 1월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3∼10년 뒤 한국 경제를 이끌어 나갈 17개 신성장동력 산업을 선정했다. 2010년 10월 지식경제부 R&D 전략기획단은 2020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 4만 달러, 세계 5대 기술 강국을 목표로 그린 카, 시스템 반도체, 에너지 효율화, 태양전지, 천연소재 신약 등 5대 미래 산업기술을 선정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미래성장전략을 처음 발표한 이후 분명한 로드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매년 새로운 계획이 나오지만 일관성도 부족하다. 22개 신성장동력을 발표할 당시 2009년부터 5년간 99조7000억원의 투자가 필요한 것으로 추산했지만 그 내용을 구체화하지 못했다.

또한 신성장동력에 힘입어 부가가치 생산액이 2008년 116조원에서 2013년 253조원으로 늘어나고, 신
규 일자리는 같은 기간에 88만 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2만 달러 시대를 벗어나 선진강국으로 도약하려면 일관성 있고 지속성 있는 미래성장전략이 필요하다. 미래사회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그에 맞는 패러다임은 무엇인지 제시해줘야 한다. 또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구체적인 액션 플랜, 재정확보 방안, 정부·민간 협력체제 등이 마련돼야 한다.

일각에선 한국 경제가 과거처럼 정부 주도의 ‘압축 성장’을 꾀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일·유럽 국가들도 여전히 국가전략산업의 큰 틀을 활용하고 있다. 미래성장전략은 차세대 성장산업의 육성과 더불어 핵심기술 인력 양성이 병행돼야 한다. 우수한 인재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기업 규모가 크고 제품 가치가 높다고 해도 결국 쇠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잃어버린 15년’과 그것을 딛고 재도약하려는 일본 경제는 훌륭한 반면교사이자 벤치마킹 대상이다. 일본은 미래성장산업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위해 세계 최고 수준의 30개 기술 분야를 선정하고 2014년까지 1조38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특히 지난해 집권한 민주당은 자민당 정권 시절 아소 다로 전 총리가 수립해 놓은 계획의 바통을 이어받아 차세대 먹을거리를 위해 초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종전까지 추진됐던 계획들을 조령모개 식(式)으로 바꿔 왔다. 정치권부터 이런 행태를 바로잡을 때 한국형 미래성장전략은 더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고재방 서울대 졸업 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박사학위(92년)를 땄다. 국회·정부·청와대에서 일했으며 교육인적자원부 차관을 지냈다. 저서로는 『글로벌 전략』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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