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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비주류 하위문화는 신선한 문화를 위한 젊은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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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호 04면

Ron English “Rainbow Lincoln” 링컨의 얼굴과 오바마의 이미지를 합성한 걸개그림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한 장면. 주인공이 지나가자 거리의 광고판들이 홍체 인식으로 개인정보를 파악하고 이름을 직접 불러가며 타깃 마케팅을 펼친다. 이 장면은 두 가지 사실을 전제로 한다. 하나는 기계와 인간을 연결하는 각종 인터페이스가 소멸되고 신체의 특정 부분을 스캔함으로써 개인정보가 즉각적으로 파악되는 신기술의 등장이다.

이진숙의 ART BOOK 깊이읽기 <5> 이광석의 『사이방가르드』(안그라픽스, 2010)

두 번째는 주인공이 걸어다니는 거리는 실제 현실과 가상현실이 공존하고 있는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의 공간이다. 스마트폰 덕분에 증강현실은 더 이상 먼 이야기가 아니다. 스마트폰의 본격적인 붐이 시작된 것이 2010년 1월이다. 채 1년도 걸리지 않아 우리는 새로운 이름의 현실에 대면하고 있는 것이다. 자고 나면 세상이 바뀌고 있으니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속의 2054년은 너무 넉넉히 잡은 설정인지도 모르겠다.

이광석의 『사이방가르드』(안그라픽스, 2010, 2만원)는 자고 나면 바뀌는 세상, ‘증강현실’이 대세가 된 사이버 시대 미술에 대한 탐구다. 이 분야 쪽으로는 외국 학자의 최신 논문들을 엮어낸 책들이 많은데, 논의의 앞뒤를 잡아내 읽기가 쉽지 않았다. 반면 낯선 용어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무난히 읽히는 것은 저자의 관점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간만에 읽은 뜨거운 이론서다. 사이버시대의 아방가르드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이 책은 미술에서 신기술 채용의 의미와 비주류 하위문화에 대한 고찰이라는 점에서 매우 시사적이다.

사이버(Cyber)와 아방가르드(Avant-garde)의 합성어인 사이방가르드(Cyvantgarde)는 말 그대로 사이버 시대의 아방가르드 예술을 일컫는다. 저항의 예술인 아방가르드가 사이버 시대에는 어떻게 발현되는가가 저자의 관심사다. 저자가 미디어 아트, 환경 아트, 정보 아트, 뉴미디어, 네트 아트 등 혼란스러운 용어 사용을 일갈하고 사이방가르드라는 용어로 통합할 수 있는 것도 매체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저항예술의 근본적인 존재 방식을 밝히는 데 더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시대마다 등장했던 아방가르드 예술 집단들은 언제나 새로운 매체 기술에 심취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법이어서, 기성의 질서에 저항하고 새로운 유토피아를 꿈꾸는 예술가들은 자신들을 표현할 새로운 매체를 기꺼이 채택한다.

게임 ‘스타크래프트’나 ‘리니지’가 보여주는 그래픽은 입이 떡 벌어지게 놀랍다. 그러나 감동적이지는 않다. 현실의 인간을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1960년대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그랬듯, 동일한 기술이라도 인간의 문제를 다루는 데 복무한다면 기꺼이 예술이라는 특권을 누리게 된다. 책은 사이방가르드 예술의 예를 다양하게 들고 있다. 기술의 비인간화와 권위주의적 사회에 도전하는 각종 ‘싸움의 기술’의 목록이자 문화적 저항행위 사례연구집이기도 하다.

저작권 소송에서 패소한 제프 쿤스, 낙서화가 뱅시(Banksy), 고도의 기술력을 가진 해커, 기계 혐오론자, 이동 책장수에서부터 ‘전자교란극장’ ‘카본방위연맹’ ‘역기술국’ ‘응용자율성연구소’ ‘개미농장’ ‘예스맨’ 등 이름만으로는 정체가 파악되지 않는 행위예술가들까지 아우른다.

이 행위예술가들은 기발한 최첨단 기법을 동원한다. 여러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협업해 이뤄내는 집단지성의 미술이다. 예컨대 ‘전자교란극장’은 멕시코 정부 홈페이지에 ‘정의’ ‘인권’ 등의 존재하지 않는 페이지를 요청하게 만들거나, ‘이 사이트에는 정의·인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404 에러’ 문구를 연속해 뜨게 만든다. 서버 다운, 중요 정보 해킹 등의 범죄행위는 하지 않으니 사법처리도 애매하다. 달리 경제적 이윤도 취하지 않는다. 그들의 행동은 테러나 해커가 아닌 ‘문화간섭’의 일환으로 일종의 개념미술적 퍼포먼스로 받아들여진다.

문화계의 악동 ‘예스맨’ 그룹의 활동은 혀를 차게 한다. 2004년 그들은 짝퉁 다우 케미컬 사이트를 만들어 1984년에 2800명가량의 인명을 잃었던 인도의 보팔 사고를 보상하겠다고 약속한다. 특종이라고 생각한 BBC는 다우 케미컬의 대변인임을 주장하는 예스맨의 멤버와 인터뷰를 하게 된다. BBC까지 낚인 대단한 사기극 혹은 예술적 해프닝이었다. 이 과정에서 다우 케미컬이라는 다국적 기업의 비윤리적 사고 처리 과정이 다시금 언론의 수면 위에 떠오르게 만들었다. 예술가가 아니라면 돈도 안 되는 일에 이렇게 열심일 리 없는 세상이다.

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은 통쾌하겠지만 당하는 사람은 죽을 맛인 일이다. 고향 풍경, 아름다운 여자와 꽃다발 그림에서 미적 향수를 느껴야 한다고 배워온 사람들에게도 불편한 미술임에 틀림없다. 더러 그들이 공박하는 저작권 문제처럼 정보의 민주화와 대중적 창작의 자유를 위한 배려와 창작자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 사이에는 미묘한 문제가 있어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그러나 새로운 감각과 감성을 날것으로 드러내는 것은 아방가르드가 만들어내는 비주류 하위문화의 매력임은 틀림없다. 사실 문화의 다양한 층위 간의 소통과 충돌은 언제나 생산적인 결과로 귀결된다.

어미·아비를 모르고 꺼덕대던 버르장머리 없는 청년도 언젠가는 어른이 되는 법이다. 비주류 하위문화는 주류문화로 편입돼 그 경계가 모호해지기도 한다. 화염병 대신 꽃다발을 던지는 시위대 그림으로 유명한 낙서화가 뱅시의 한 작품은 2007년 소더비 경매에서 약 6억원에 팔렸다. 20세기 초반의 다다이스트들, 60년대 백남준과 요제프 보이스의 플럭서스 그룹들 모두 시간과 함께 미술사의 중요한 흐름으로 등재됐다. 주류문화로의 편입은 비주류 문화의 저항성이 희석되었다는 것과 동시에 주류문화가 그만큼 건강한 포용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은 불편한 이 미술들은 건강한 비주류 하위문화를 형성하며 문화 전체에 신선한 피를 수혈해 젊음을 유지하게 하는 힘이다.

저자 자신이 저항의 의지와 사이버 시대에 대한 유토피아적 희망을 갖고 있는 이론적 아방가르드다. 게다가 인터넷의 수평적인 소통관계, 자유로운 아마추어 정보 생산자들의 힘을 중시하는 디지털 민주주의자다. 그가 꿈꾸는 것은 인간의 얼굴을 한 유비쿼터스 세상이다. “이제까지 혁명이라 말한 것들은 인간 삶의 일부만 변화시켰을 뿐이다”라고 말하며 저자는 정권의 색깔과 지도자의 얼굴만 바뀐 기존 혁명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낸다. 그러나 “디지털은 이 모든 것들의 혁명이다. 삶의 결 하나하나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것, 그것이 디지털이 만들어내는 거대 혁명이다”라고 주장한다.

인간의 삶을 향상시키는 기술은 현실의 불평등 조건을 그대로 떠안고 다가온다. 법과 경제의 논리는 당연히 기술 소유자의 권리를 수호하는 방향을 취한다. 기술 중심의 사회에서 ‘인간’에 대해 숙고하고 기술의 맹목적이고 비인간적인 발전에 딴죽을 거는 역할은 다시금 예술의 것이 된다. 그 이름이 무엇일지라도 이것은 변함없는 예술의 숙명이고 존재 이유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이진숙씨는 러시아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미술 작품에서 느낀 감동을 전하는 일을 업으로 여긴다.『러시아 미술사』『미술의 빅뱅』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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