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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복의 명품TALK] 남자시계 지존, 파텍 필립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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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미국 배우 찰리 쉰이 해프닝의 주인공이 됐다. 뉴욕 플라자호텔에 한 포르노 배우와 투숙해 만취 상태에서 알몸으로 집기를 부수는 등 난동을 부린 것이다. 이 때 그는 시계를 분실했다. 난동으로 망신을 떨었지만 그는 이것보다 분실한 시계 때문에 더 난감해 했다고 한다. 대스타가 시계 하나 잃어버렸다고 뭐 그리 대수냐고 할 사람이 있겠지만 그게 보통 시계가 아니었다.

최고의 명품 시계로 꼽히는 파텍 필립(Patek Philippe) 5970이었다. 가격은 15만 달러(약 1억7,000만원)에 이른다. 벤츠 한 대를 잃어버린 것이다. 이 모델은 파텍 필립 중에서도 매니어들이 열광하는 아이템이다. 구입하려면 대기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놓고 하염없이 기다려야 할 정도다. 파텍 필립은 모든 시계가 한정 제작품인데 5970 같은 최상위 모델은 더욱 그렇기 때문이다.

명품시계 중에서도 서열이 단연 으뜸인 파텍 필립은 폴란드의 망명귀족인 앙뜨와르드 파텍과 프랑스의 시계장인 장 아드리앙 필립에 의해 1830년대에 탄생했다. 시계 장인은 대부분 스위스 출신인데, 이것만은 프랑스다. 19세기 중반 유럽의 부자들은 회중시계를 좋아했다. 그게 그들의 부를 상징했다. 당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도 자주 등장한다. 당시 회중시계는 열쇠를 이용해 일일이 태엽을 감아줘야 했다. 1851년 파텍필립은 세계 최초로 열쇠 없이 태엽을 감는 시계를 개발했다. 이른바 용두시계다.

이 시계는 런던 세계 박람회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걸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샀다. 로마 교황을 비롯해 차이코프스키, 아인슈타인 등 유명인사들의 애장품이 되면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 후에도 귀족과 셀레브리티들이 애호하면서 180년간 최고의 명품시계라는 소리를 들어왔다. 지금은 아드리앙 필립의 후손인 헨리 스턴의 아들 필립 스턴이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시계는 시간을 확인하는 용도에서 벗어나고 있다. 핸드폰이나 오디오 기기에도 시간이 표시되고,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쿼츠 시계가 보편화된 후 다들 정확하다. 정확한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시계를 찰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그래도 시계 시장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왜 그럴까. 멋으로 시계를 차는 시대가 온 것이다. 요즘 시계는 남자들의 유일한 사치품으로 불린다. 여자들이 몇 백, 몇천 만원짜리 가방에 목을 매듯 남자들은 자신의 손목을 들어보이고 싶어한다.

소득이 높아지면서 명품 구입이 보편화됐고, 사람들은 브랜드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보이고 싶어한다. 명품시계는 남성들의 캐릭터를 대신하는 일종의 아바타 같은 역할을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 중에서도 파텍 필립 시계는 에르메스의 고가백에 비견된다.장인정신의 결정체라는 것과 강한 희소성이 두 브랜드의 공통점이다. 그래서 고객들의 충성도가 매우 강하고, 그런 전략이 더 많은 고객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파텍필립 1527 크로노그래프'이란 귀하신 몸이 2010 제네바 포시즌즈 호텔에서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 나왔다. 1943년에 생산된 이 제품은 세상에 단 두개만 남아있는 물건이다. 이날 경매에 나온 것과 파텍필립 박물관에 보관된 1개. 전문가들의 예상가는 250만 달러(약 30억원)였는데 실제로 얼마에 낙찰됐을까. 두 배가 넘는 570만여 달러(약 66억원)에 팔렸다. 흔히 억대 시계는 보석이 많이 박혀있다. 하지만 이건 희귀보석이 하나도 없는 18K였다. 시계 매니아들 사이에서 '성배'라고 불리는 이름값을 톡톡히 한 것이다.

심상복 기자(포브스코리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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