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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f&] 스크린 골프 남녀 챔피언 이종인·정지원씨 만나보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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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스크린 골프계의 타이거 우즈 이종인씨와 여자 지존 정지원씨. 스크린 골프에서 이씨는 21언더파, 정씨는 10언더파가 최저타 기록이다. 진짜 골프장에서도 이씨는 9언더파, 정씨는 1언더파의 기록을 보유한 실력파다. [김상선 기자]


골프계에는 숨은 고수가 많습니다. 오죽하면 ‘프로 잡는 아마추어’란 말도 나왔을까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스크린 골프엔 투어 프로들도 생겨났습니다. 프로골퍼 못지않은 뛰어난 실력으로 올해 스크린 골프대회를 제패한 남녀 챔피언 이종인(46)·정지원(48·여)씨가 대표적입니다.이번 주 golf&은 올해 스크린 투어에서 맹활약을 펼친 남녀 챔피언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이종인씨는 경주에 있는 자동차 부품회사에 다니는 회사원이다. 낮에는 평범한 엔지니어지만 퇴근 후 스크린 골프장에 가면 절대 지존으로 대접받는다. 골프존 이용자 가운데 그의 아이디 ‘버디 리’를 모르는 이가 거의 없다.

이씨는 올해 골프존에서 3월부터 10월까지 매달 열린 골프존 라이브 토너먼트(GLT) 대회에서 2승을 거뒀다. 지난달 열린 ‘왕중왕’전인 GLT 마스터스에선 9언더파를 기록하며 3승째를 거뒀다. 올해 벌어들인 상금이 1150만원이나 된다. 지난해는 9개 대회에서 8승을 쓸어 담으며 상금으로만 2400만원을 벌었다. 지난해 자동차 회사에서 주최한 골프대회에서도 우승해 3000만원가량의 자동차를 부상으로 받기도 했다.

그는 “마스터스 대회 우승상금 300만원으로 김치냉장고를 샀다. 아내에겐 핸드백을 사서 선물했더니 굉장히 좋아하더라. 지금은 아내가 ‘스크린 골프 열심히 하라’며 적극적으로 밀어 주고 있다”며 웃었다.

이종인(左), 정지원(右)

이씨의 부인 강나희(43)씨는 “남편은 독종이란 별명을 갖고 있을 정도로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본다. 골프 하기 전에 배드민턴을 배웠는데 체중이 10㎏이나 빠질 정도로 매달렸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각종 대회에서 수상한 트로피가 너무 많아 더 이상 보관할 수 없을 정도다. 스크린 골프는 그린피도 저렴하고 부수입도 생겨 좋다”고 말했다.

이씨의 강한 정신력과 관련해 스크린 골프계에 전설처럼 전해지는 일화가 한 가지 있다. 3년 전 스크린 골프업체 골프존에서 일정 기간 가장 많은 라운드 횟수를 기록한 고객에게 중국 여행권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했다. 이 여행권의 주인공은 이씨였다.

“마감 사흘 전부터는 밤을 새워 가며 하루에 30라운드씩 돌았다. 다른 사람들은 힘들어 친구들이 대신 쳐 주기도 했다는데 나는 혼자 손이 부르틀 때까지 라운드를 계속했다. 한 달 동안 300라운드를 했더니 나중에는 손이 안 펴질 정도였다.”

그는 올해 골프존에서 부여하는 ‘레전드’ 칭호를 처음으로 얻었다. 레전드는 일반 골프로 말하면 명예의 전당과 같은 것이다. 각종 대회 성적과 라운드 횟수(1000라운드에 100점) 등을 합쳐 남자는 1500점, 여자는 1000점 이상을 넘어야 레전드 칭호를 얻을 수 있다. 레전드 1호가 된 그는 “전국의 많은 스크린 고수 가운데 최고 자리에 올라 기쁘다. 스크린 골프도 연습을 게을리 하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 꾸준한 연습만이 실력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정지원씨는 올해 레이디스 골프존 라이브 토너먼트(LGLT) 마스터스 우승을 포함해 3승을 거뒀다. 480만원의 상금을 획득해 상금왕을 차지했다. 울산에서 골프연습장을 운영하고 있는 정씨는 “스크린 골프를 시작한 지 6년 정도 됐다. 이제는 아이디(백호의 여왕)가 알려지면서 주변에서 내기를 하자고 하는 사람이 없다. 레전드가 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정씨가 스크린 골프에서 기록한 베스트 스코어는 10언더파. 정씨는 “애정과 열정이 있어야 스크린 골프를 잘 칠 수 있다”고 말한다. 직접 제작한 야디지북을 항상 가지고 다니는 정씨는 “스크린 골프도 퍼팅에서 승부가 갈린다. 그린의 경사, 빠르기 등을 직접 그려 넣은 뒤 그린 어느 부분을 공략할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며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대부분 자신이 만든 야디지북을 가지고 다닌다. 스크린 역시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는다”고 강조했다.

스크린 골프 고수들은 한결같이 “골프를 잘 쳐야 스크린에서도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평균 드라이브샷 거리가 260야드를 넘는 이종인씨의 핸디캡은 2. 이씨의 베스트 스코어는 2007년 경주 보문골프장에서 기록한 9언더파 63타다. 이씨는 각종 지역 대회는 물론 도민 체육대회에서도 여러 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1m83㎝의 키에 몸무게 74㎏인 이씨의 장기는 정교한 아이언샷과 퍼팅이다. 스크린 골프 베스트 스코어는 21언더파. 이글 3개를 포함해 매 홀에서 버디를 기록한 끝에 21언더파를 적어 냈다. 스크린 기록만 놓고 보면 타이거 우즈가 부럽지 않다. 스크린 골프에서 홀인원 17차례, 알바트로스는 7번이나 기록했다.

이씨는 세미 프로나 레슨 프로들과 종종 라운드를 한다. 필드에선 핸디캡을 받지 않고 스크린에서는 오히려 2~3타를 잡아 준다. 이씨는 스크린 골프를 즐기기 위해 한 달 평균 20만~30만원을 쓴다고 했다. 정씨 역시 매일 평균 2라운드를 한다.

키 1m69㎝의 당당한 체격인 정씨는 여성인데도 폭발적인 장타가 특기다. 정씨는 “남자들이 스크린 골프에서 지면 실제 필드에서 내기를 하자고 제의를 해 온다. 스크린이건 필드건 남자한테 져 본 일이 거의 없다. 실력이 뛰어난 골퍼가 스크린에서도 좋은 스코어를 낸다”고 말했다. 실전 골프에서도 싱글 핸디캡의 실력을 자랑하는 장씨의 베스트 스코어는 지난해 경주 신라골프장에서 기록한 1언더파. 스크린 골프 베스트 스코어는 10언더파다. 드라이브샷 평균 거리는 230야드.

이씨는 스크린에서 쇼트게임 연습을 하면 실제 라운드를 할 때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스크린 골프에서 쇼트게임과 퍼팅 연습을 한다는 이씨는 “스크린 골프에서는 홀까지 거리가 정확하게 표시되기 때문에 자신의 샷거리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실제 필드에서 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현재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스크린 골프 프로(?)는 남자의 경우 550여 명, 여자는 60명 정도다. 마스터스로 불리는 이들은 전국대회에서 한 번 이상 결승전에 진출해 상금을 탄 선수들을 말한다. 고수들에게 스크린 골프에 대한 비법을 전수받는 문하생들도 있다. 이씨 역시 많은 문하생을 거느리고 있다. 이씨의 영향으로 경주에는 13명의 마스터스가 생겨났다. 그래서 이씨는 스크린 골프장에 갈 때마다 그린피 할인 혜택을 받는다. 스크린 골프 스타가 되면서 용품은 물론 의류를 지원하는 업체도 생겨났다.

상금만을 노리는 전문 ‘타짜’들도 있다. 정씨는 “지역마다 업주들이 상금을 걸고 크고 작은 이벤트 대회를 연다. 우승 상금이 100만~500만원 정도 된다. 이런 대회를 노리는 전문 꾼들이 있다”고 말했다.

골프존은 내년에 일반 프로들도 참가할 수 있는 G투어(가칭)를 신설할 계획이다. 남녀를 합쳐 18개 대회가 열리는데 총상금 규모가 수십억원이 넘는다. 이씨는 “밀폐된 스크린 골프장에서 타당 50만~100만원씩을 걸고 내기 골프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을 양지로 끌어내기 위해서라도 G투어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골프존은 G투어 대회를 위해 최첨단 센서를 장착한 기계를 개발했다.

스크린 골프를 잘 칠 수 있는 비결을 물어봤다. 이씨는 “퍼팅이 중요하다. 라인을 읽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퍼팅을 할 때는 우선 일정한 거리를 보낼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씨는 “벙커샷을 할 때는 특별한 요령이 필요하다. 벙커샷은 남은 거리보다 20~40% 이상 더 보고 샷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문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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