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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큰 치킨’이 남긴 것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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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상임부회장

한 마리에 50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롯데마트의 ‘통큰 치킨’이 결국 일주일 만에 막을 내렸다. 통큰 치킨은 매장별 한정 수량이 불과 한 시간 만에 다 팔리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이 같은 뜨거운 호응의 반대편에는 중소상인들의 반발과 미끼상품이라는 비난이 들끓었으며, 결국 자발적인 판매중단으로 결론을 맺었다. 과연 통큰 치킨은 일각의 주장처럼 당연히 판매중단되어야 할, 아니 애초에 시도되지도 말았어야 할 ‘문제 있는’ 접근인가.

 통큰 치킨은 대기업이 현재 형성되어 있는 시장가격보다 훨씬 저렴하게 팔아 중소 상인들의 매출이 타격을 받을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비난받았다. 그러나 원료의 대량구매 등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한 대형마트 본연의 가격경쟁력 실현을 사회적 관념의 문제로까지 확대시켜 비판 일색으로 바라보는 것은 적절한 접근이라 할 수 없다. 특히 기존 프랜차이즈 치킨과 통큰 치킨의 경우처럼 배달 유무, 이용시간대, 접근 용이성 및 부가서비스 등 소비자 선택의 중요한 요소들에서 현저한 차이가 있을 때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뿐 아니라 싼 가격으로 인해 중소상인들이 큰 피해를 볼 것이라는 주장 역시 추측에 불과하다. 5000원짜리 치킨은 그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 1만5000원이란 가격이 부담이 되어 치킨을 사 먹지 못하는 소비자들이 5000원에 치킨을 구매한다면, 그 수요는 새롭게 창출된 것이다. 즉 어느 일방의 큰 피해 없이 소비자 후생을 증대시킬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측면에서 단지 대기업이 현재 형성된 시장가격에 비해 싸게 판다는 이유만으로 부도덕하다고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 5000원짜리 치킨이 없어졌을 때, 5000원이 넘으면 사 먹기 힘든 소비자들의 피해는 무엇으로 보전할 것인가.

 최근 불거진 기업형 수퍼마켓(SSM)이나 이마트 피자 등의 사례를 보더라도 소비자의 목소리는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대형 유통업체와 중소상인 간의 영역 싸움으로만 비춰지고 있다. 중소상인의 권익보호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소비자 선택권도 존중받아야 할 가치라는 것이다. 통큰 치킨을 사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긴 줄을 선 많은 소비자의 선택의 자유와 중소상인의 상권보호라는 가치 가운데 어떤 것이 우선한다고 누구도 쉽게 말할 수 없는 일이다.

 비합리적인 진입장벽으로 시장경쟁을 인위적으로 제한해 일부 주체들을 과도하게 보호하려는 발상은 실효성을 가질 수 없다. 대기업 자본에 대한 거부감을 앞세워 경쟁력 있는 상품들이 가져다주는 순효용에 대해서는 전혀 평가하려 들지 않는다면 시장경제의 발전은 더딜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비자의 눈은 더 이상 경쟁력 없는 상품에 멈추지 않는다. 앞으로도 우리는 규모의 경제를 갖춘 새로운 상품이 나올 때마다 늘 갈등과 분열을 경험해야 하며, 대기업의 양보 또는 규제를 통한 해결이라는 사회적 비용을 감수해야 할 것인가. 짧은 기간 큰 이슈를 남긴 이번 사태를 통해 통큰 치킨을 선택한 사람들이 누구였으며, 통큰 치킨이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는 특정 이익집단의 이해관계에서 한 걸음 물러나 사회 전체의 진정한 효용과 편익 증대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상임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