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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처럼 지하대피소로 뛰는데 … 한쪽선 차 탄 채 구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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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북한의 포격 등 실제 상황을 가상한 민방공 특별 대피훈련이 15일 오후 2시부터 15분간 구제역 발생 지역(경북, 경기도 연천·양주)을 제외한 전국에서 실시됐다. 서울 아현중학교 학생들이 지하철 2호선 아현역에 대피해 있다. [김성룡 기자]

15일 북한의 포격 등 비상 상황을 가상한 민방공 특별 대피 훈련이 열렸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대피 훈련은 1975년 민방위 기본법이 제정된 이후 35년 만에 처음이다.

 이날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광장. ‘에에엥~’ 하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공습경보가 발령되자 2분여 만에 광장 인근 사거리가 텅 비었다. 경찰이 차도를 가로막고 안전봉으로 차량을 정지시켰다. 대부분의 차량은 갓길에 멈춰 섰다. 일부 차량은 정지 지시를 무시하고 지나가려다 경찰의 제지를 받고서야 차를 세웠다. 소방방재청은 이날 훈련에서 차량 이용자도 지하도 등 대피소로 대피시킨다는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대부분의 승용차 운전자들은 내리지 않았다. 공습경보가 끝날 때까지 차에 타고 있었다.

  2시 정각, 을지로 2가 로터리. 사이렌과 동시에 모든 신호등이 멈추고 주황색 비상등만 깜빡였다. 왕복 8차선 도로에 가득한 차들이 동시에 멈춰 섰다. 경찰과 노란 점퍼 입은 민방위 대원들이 거리에 나와있는 사람들에게 외쳤다. “민방공 훈련입니다. 건물로 들어가세요.”

 하지만 일부 행인은 인도 한 구석에 선 채 훈련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한 시내버스 기사는 차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고 들어갔다. 퀵서비스 기사들은 차로에 선 채 고객에게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지금 민방공 훈련 때문에 섰습니다. 곧 가겠습니다.” 허재훈(46)씨는 “퀵 배달하다가 이렇게 멈춰 보는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민방공 특별훈련이 실시된 15일 오후 2시 차량이 멈춰선 서울역환승센터에서 대피하지 않은 시민들과 버스기사가 훈련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훈련시간 동안 차량은 길가에 정차하고 승객들은 가까운 지하대피소로 이동해야 한다. [조용철 기자]

 같은 시각, 서울 강남구 역삼동 강남사거리. 민방공 훈련 시작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려퍼지자 민방위 대원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행인들을 대피시켰다. 약 4분 만에 강남 사거리 인도는 텅텅 비었다. 일부 시민은 강남역 지하로 뛰어 내려갔다. 동시에 강남 사거리 차도를 달리던 차들도 멈춰 섰다. 하지만 차에서 내려 지하 대피소로 이동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 차량 운전자는 정차한 차에서 내려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잠시 뒤 경찰차 한 대가 사이렌을 울리고 지나가면서 인도에 서있는 시민들에게 확성기로 “지하로 내려가세요”라고 지시했다. 2시10분. 강남역 7번 출구엔 입구까지 사람이 가득 찼다. 강남역에서 내린 승객과 인도에서 대피한 사람까지 섞여 훈련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민방위대원 2명이 입구를 지키며 사람들을 통제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통제를 벗어나려는 일부 시민이 눈에 띄기도 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학생 3명은 “지하로 대피하라”는 민방위대원의 말에도 웃으며 대꾸하다 결국 구석진 건물 앞에서 훈련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민방위 대원으로 참여한 역삼 1동 통장 최예희(59·여)씨는 “시민들이 비교적 협조를 잘해 줬으나 일부 젊은이는 지시를 잘 따르지 않아 힘들었다”고 말했다.

 2시15분. 공습 경보가 경계 경보로 바뀌었다. 차량 통행은 경계 경보가 끝난 뒤에 가능하지만 모든 차량이 움직였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이번 훈련은 이전과 달리 차량에서도 내려서 대피할 수 있게 하는 훈련이지만, 강제할 수 없어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강남경찰서 관계자도 “차량 탑승객을 모두 차에서 내리게 하면 큰 혼란이 올 수 있어 보행자 대피 훈련에 중점을 맞췄다”고 했다.

글=송지혜·심서현 기자
사진=김성룡·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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