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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다시 생각해 보는 ‘장군의 DNA’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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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최 훈
토요섹션 j 에디터

북한의 연평도 도발 사건 이후 좌절과 수모를 겪은 세 명의 장군이 있다. 재산 형성 과정 때문에 낙마한 황의돈(대장) 육군참모총장, 대통령의 ‘확전 자제’ 지시 과정에 얽혀 경질된 김병기(소장) 국방비서관이다. ‘보온병’ 사건으로 곤혹을 치른 황진하(예비역 중장) 한나라당 의원은 포병여단장 출신이다. 황 의원은 “‘보온병 포탄’ 때문에 ‘돌팔이 포병’ 얘기를 듣고 있다”며 자신의 여당 보스를 거들어주다 나온 ‘망신’에 우울해 한다 .

 황 전 총장, 김 소장이나 황 의원 정도면 현재 우리 군 내의 엘리트 층에 속한다. 세 사람 개인을 폄하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문제는 37년 넘게 ‘실전(實戰)’ 경험이 없었던 우리 군 지도층의 의식과 정신, 실력에 대해 국민들이 갖게 된 찜찜한 의구심이다. 1973년 3월 월남 파병 병력의 완전 철수 이후 말이다.

 황 전 총장은 합참 작전기획부장,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지냈다. 김 전 비서관은 국방부의 한·미 미래동맹TF팀장, 전작권 전환추진단장 등을 거쳤다. 황 의원 역시 국방부 정책기획차장, 합참 참모부장, 주미대사관 무관을 지냈다. 세 사람 모두 전략, 기획, 대미 협력 등의 주요 보직 경력으로 빼곡하다. 물론 긴요하지만 혹여 이런 길만이 우리 장군의 엘리트 코스가 아니었는지도 의문이다.

 전략(strategy)이란 말은 고대 그리스어 ‘strategos’에서 유래했다. 원래 군대를 의미하는 ‘stratos’와 이끌다(lead)는 뜻을 지닌 ‘ag’가 합쳐진 말인 ‘strategos’란 ‘장군(general)’을 의미했다. 현장의 전투에서 쓸 대형과 병술 , 적을 궤멸시킬 치밀한 책략을 연구하는 게 전략의 원초적 의미다.

 그러나 57년간의 ‘정전(停戰) 상황’과 1980년대 정치군인 시대, 한 꺼풀 위의 ‘평화적 외양’이 계속되면서 우리 장군들이 정치적인 의미의 전략과 생존 스타일에 함몰되고, 그래서 뭔가 유약(柔弱)해진 건 아닌지…. 연평도 사건은 퍼뜩 정신 들게 해주었다.

 군인 중의 군인, 장군은 사실 “전쟁은 우리 삶과 불가분 관계”라고 믿는 특수한 ‘전사(戰士)의 DNA’를 지녀야 한다. 천성이 호전적이고 공격이 본능인 혈통이다. 늘 적과 동지를 분명히 갈라야 하고, 그 적에 집중해야 한다. 전투가 없으면 승리할 기회도 없다는 승부욕도 필요하다. 당연히 어떤 전장의 실패도 그들에겐 용납되어선 안 된다. 이겨서 추앙받는 것, 그게 장군의 유일한 업(業)이다. 나머지는. 정치인과 외교관의 몫이다.

 67년 ‘6일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스라엘의 ‘애꾸눈 장군’ 모세 다얀이야말로 이런 DNA에 가장 충실한 인물이었다. 아랍에 대한 선제공격의 대외명분이 없다며 주저하던 온건파에게 그는 “이기려면 선제타격뿐”이라고 맞선다. 200대의 이스라엘 전투기들이 교신을 금지한 채 해상 100m의 초저공으로 날아갔다. 개전 첫날 90대의 이집트 미그기를 포함, 410대의 아랍 공군기가 지상에서 부서졌다. 전투의 시작이자 전쟁의 끝이었다.

 일본의 구리바야시 다다미치(栗林忠道) 중장. 육사를 우등 졸업하고, 미 하버드대에서 연수하며 미국의 엄청난 잠재력을 봤다. 미국과의 개전에 “매우 절망적 ”이라고 그는 우려했다. 천황근위사단을 이끌던 그가 최후의 방어선인 이오지마(硫黃島)섬의 사단장으로 부임한다. 병력은 2만여 명.

 1945년 2월 미 해병 등 8만 명의 미군이 이 섬을 공격한다. 길어야 열흘로 예상했지만 미군은 첫날 566명의 전사자를 내는 등 무려 6822명이 사망한다. 여섯 해병이 그 섬 스리바치산의 정상에 성조기를 세웠지만 사진 속 해병 3명도 그 직후 전사한다. 미군의 승리는 36일이 지나서였다. 뭘까. 구리바야시는 그 섬에 총 18㎞의 지하터널을 파 요새화했다. 그의 예견대로 희망은 없는 전투였다. 하지만 미개한 ‘반자이(만세) 돌격’ 대신 근접 미군만 가격하는 지능적 전술까지 구사했다. 결국 할복(割腹)으로 항복(降伏)을 대신했지만 그는 ‘장군 DNA’를 지닌 사람이었다.

 실전은 없어야 하겠지만 실전 경험이 필요한 딜레마. 그 속에서 우린 대한민국 장군들의 현재 실력에 대해 솔직히 잘 알 길이 없다. 야전군 사령관 출신인 김관진 신임 국방부 장관은 이렇게 약속했다. “서류작성에만 신경 쓰는 군은 되지 말자” “오늘 당장 전투에 투입돼 싸워 이길 군이 되자.”

 이 말 저 말 필요 없다. 김 장관은 임기 내내 장군들에게 이 두 가지 약속만을 철저히 검증하고 다니라.

최훈 토요섹션 j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