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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일기] MBC 〈일요일 밤〉의 불감증

중앙일보

입력

"찍지 마세요, 감독님 그러실 거예요.진짜…" "(울먹이며) 하기 싫다고 그랬잖아, 왜 시켜 가지고 그래!" 연기가 아니다. 지난 10일 방영된 MBC 〈일요일 일요일밤에〉 에서 가수 조성모가 내뱉은 불만이다.

탤런트 최화정에게 반지와 목걸이를 선물했던 조성모는 최화정의 반응을 지켜본 뒤 몰래 카메라였다고 고백한다.

그러자 최화정이 "아 짜증나,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 며 화를 내기 시작한다. 심지어 자기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냐" 며 정색을 하고 따진다. 당황한 조성모는 '미안해 누나' 를 연발하다 끝내 울음을 터뜨린다. 제작진은 쾌재를 부른다. 실제론 조성모를 대상으로 이중 몰래카메라를 찍고 있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최고의 로맨틱 서바이벌 몰래 카메라' 란 거창한 자막까지 나갔던 이날 내용은 3일 방영된 '조성모 몰래 카메라' 의 후속편이다.

이 문제는 9일 MBC 〈TV속의 TV〉 에서도 지적됐다. '후속편 촬영을 위해 끝까지 당사자에게 몰래 카메라였음을 밝히지 않았다' 는 점과 '누가 누구를 속인다는 내용이 재미는 커녕 짜증만 가중시킨다' 는 등의 불만이 접수됐던 것. 하지만 다음날 방영된 '일요일…' 은 이런 지적들을 무색하게 했다.

'몰래 카메라' 의 영어식 표현은 'candid camera(솔직한 카메라) ' .말 그대로 꾸밈 없는 모습을 담는 게 매력이다.

그러나 이 방식에 시청자들이 '면역' 반응을 보이면서 몰래 카메라는 작위적이고 가학적으로 변질했다.

그럼에도 '일요일…' 에서 최근 이를 '부활' 시킨 이유는 뭘까. 물론 초단위까지 경쟁을 벌여야하는 주말 저녁시간대 프로그램이 안고 있는 부담감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면엔 프로의 영향이야 어떻든 눈길만 끌고 보자는 제작진의 불감증이 도사리고 있다.

주말 저녁이 광고 수입을 좌우하는 주요 시간대인 것만 알지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소중한 시간대임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또 경쟁에 대한 부담감을 새로운 형식이나 아이디어로 돌파하지 못하고 '한물간' 몰래 카메라를 다시 끌어온 건 시청률만 따지는 제작진의 안이함으로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일요일 밤, TV를 보면서도 유쾌해질 순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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